마음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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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 전진화 전남서부 근로자건강센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든 짧든 한 번씩은 숨을 참아 봤을 텐데요.
저도 어린 시절 세수대야에 물을 가득 채우고 숨을 양 볼 가득 담아 대야 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친구와 함께 누가 더 오랫동안 숨을 참아내는지 내기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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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록은 24분 37.36초라지만 4분 이상 뇌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손상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음의 숨 참기는 세계 기록과는 비교도 안 될 24분 37.36초가 아닌 몇 년, 아니면 언제 숨을 쉬었는지 조차 모르는 채로 지내는 이들이 많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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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심리학자는, ‘인간의 모든 심리적 문제를 사람이 숨을 참고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탁월하게 정의했습니다.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자기 안쪽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할 때 고통을 겪는다는 거지요.
내가 지금 숨을 참고 있다는 자각, 그것을 털어내는 심리적 숨쉬기, 이것은 능력 이전에 생존의 문제입니다. 침묵이 인간의 내면을 위대하게 한다면 소리내기는 사람의 일상을 편안하게 합니다.2)
제때 숨을 쉬어야 다시 참을 수도 있는데요. 숨을 쉬는 것은 생존적인 부분인데도 인식을 못 한다면 그 삶이 편안할 수 없겠죠. 그러니 그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제가 센터에서 진행한 첫 집단 상담* 내담자분들의 모습이 그러하였습니다. 택시노동자 건강관리 지원 프로그램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본 프로그램은 먼저 직무스트레스 상태를 확인하고 잠재적 및 고위험 스트레스 대상자분들을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위한 집단 상담이었고, 직무스트레스 척도 결과는 직무 불안정, 조직체계, 보상 부적절 등 3개 항목에서 특히 매우 높은 점수가 참여자 대부분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제가 접한 택시노동자는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 역시 매우 취약한 집단 이었습니다. 특히 심각한 감정노동에 직면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정신건강 보호와 후속 조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는 현실이었으며, 또한 사납금 압박, 안전 운행, 긴장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의 다양한 요인은 택시 노동자의 정신건강에 무리를 주고 있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따라서 기존 택시 노동자의 육체적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정신건강 영역까지 좀 더 촘촘한 법·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확대되어야 할 부분이 크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택시 노동자와의 첫 상담에서 내담자들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 ‘사는 게 다 그렇죠. 뭐···.’라는 말을 허공에 뱉어낼 뿐이었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운전으로도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서럽고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오롯이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 늘 가족들에게 경제적 풍요를 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지금까지 숨만 참고 견디며 내 가족의 삶이 좀 더 나아지도록 자신을 태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 우리 아버지들의 그런 뒷모습을 보며 자란 남성분들은 가장이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대물림처럼 여겨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회기까지 참여했던 세 분의 노동자는 그동안 같은 일을 하면서 늘 함께했던 동료들이었지만, 나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속을 보여준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지만 이런 나의 속마음을 고생하는 집사람도, 자식들한테도 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말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네요.”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시던 모습은 그저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가장의 모습인 것 같았습니다.
또한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의 처지를 잘 알기에 나의 힘듦까지 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그 말들 속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들만의 감정적 교류랄까, 애써 외면해오던 감정은 어느새 무감각해져 내 마음에 겹겹이 굳은살만 더 해지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내보이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셨다고 합니다. 막상 풀어놓고 보니 지나온 삶과 현재 삶이 교차하는 이 시점에서 지난 내 모습에 눈물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그 후련함처럼 저 깊이 묵혀 두었던 숨을 ‘후~’하고 뱉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 그리고 그 숨을 쉴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이곳이어서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제가 더 후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안의 가장 간절한 것들은 잘 드러나지도, 보여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끔은 용기 내어 나의 내면을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내 마음을 잘 보살피고 보호할 수 있는 자기 돌봄의 한 방법입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가는 자기 돌봄의 시간과 경험으로 우리 모두의 삶이 잘 순환되는 편안한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1) 홀가분, 정혜신·이명수, 해냄출판사, p70
2) 홀가분, 정혜신·이명수, 해냄출판사, p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