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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음, 과음, 적절음주

글. 오재일

  • 박애병원 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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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여러 질병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 물질이며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질병의 경과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또한 술에 대한 의존성은 음주자의 건강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만든다. 그럼에도 하루 한 잔 정도의 술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잊을 만하면 보도되고 있다. 이런 일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하루 한 잔 정도의 술은 아주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해롭지 않을 수 있다’ 정도가 음주에 대한 가장 관대한 평가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음주의 사회적 비용은 흡연의 그것을 넘어선다. 2019년 기준으로 흡연에 의한 사회적 비용이 13조 수준인데 비해, 음주에 의한 사회적 비용은 15조가 넘는다. 음주는 흡연과는 접근 방법이 조금 다르다. 음주에는 ‘적절음주’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단어 그대로 술을 적당히 마시는 수준이라는 의미이다. 음주와는 달리 흡연에는 ‘적절흡연’이라는 개념이 없다. 흡연의 경우 흡연과 비흡연만 있다. 하루에 한 갑을 피워도 흡연이고 한 개비를 피워도 흡연이다.

‘적절음주’에는 비교적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 ‘적절음주’의 기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음’과 ‘폭음’의 정의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미국 NIAAA(National Institute on Alcohol Abuse and Alcoholism)에서 정의한 ‘과음’과 ‘폭음’ 기준은 다음과 같다(NIAAA는 ‘과음’과 ‘폭음’의 기준을 성별과 연령에 따라 다르게 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64세 이하의 ‘과음’과 ‘폭음’ 기준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65세 이상의 기준은 64세 이하의 절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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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음’은 1주일 동안 마신 음주량을 기준으로 평가하며 음주량은 표준 잔으로 계산한다. 남자의 경우 1주일에 표준 잔으로 14잔, 여성의 경우 1주일에 표준 잔으로 7잔을 초과하는 음주는 ‘과음’으로 정의한다.

‘폭음’은 1회 음주에 마신 음주량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남성의 경우 1회 음주에 표준 4잔, 여성의 경우 1회 음주에 표준 3잔을 초과하여 마시면 ‘폭음’으로 정의한다.

술은 종류에 따라 알코올 도수와 잔의 크기가 다르다. 따라서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술에 포함되어 있는 알코올 양은 술의 종류와 잔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차이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표준 잔’이다. 따라서 표준 잔은 실제로 사용하는 잔이 아닌 음주자가 섭취하는 알코올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단위이다. NIAAA에서는 알코올 14g을 표준 1잔으로 정의하고 있다(WHO는 알코올 10g을 표준 1잔으로 정의한다). 알코올 함량이 5%인 350㎖ 맥주 1캔, 40%인 위스키 1잔, 12%인 와인 1잔에는 모두 14g 가량의 알코올이 들어간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표준 1잔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술을 담는 잔(또는 캔)의 크기가 그냥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술의 종류에 따라 14g 정도의 알코올이 담을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주와 소주잔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위의 기준과는 차이가 있다. 소주 1병을 8잔으로 계산할 경우 알코올 함량 20%인 소주 1잔에는 대략 7g의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소준 1잔은 표준 0.5잔에 해당된다(즉, 소주 2잔은 표준 1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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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잔을 실제 음주자가 마시는 술로 환산하여 ‘과음’과 ‘폭음’의 기준을 확인해 보자. 앞에서 남자의 경우 1주일에 표준 14잔을 초과하여 마시면 ‘과음’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를 캔맥주로 환산하면 1주일에 14캔, 소주로 환산하면 1주일에 3.5병을 초과해서 마시는 경우에 해당한다. ‘폭음’은 남자의 경우 1회 음주에 표준 4잔을 초과하여 마시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따라서 1회 음주량이 맥주 4캔을 초과하거나 소주 1병을 초과하면 ‘폭음’에 해당한다.

‘적절음주’는 ‘과음’과 ‘폭음’이 아닌 음주를 의미한다. 따라서 남자의 ‘적절음주’ 기준은 1주일에 표준 14잔 이하(알코올 함량 5%인 350㎖ 맥주 14캔 이하), 1회 음주에 표준 4잔 이하(맥주 4캔 이하)의 음주이다. 여자의 ‘적절음주’ 기준은 1주일에 표준 7잔 이하(맥주 7캔 이하), 1회 음주에 표준 3잔 이하(맥주 3캔 이하)이다.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적절음주’의 기준을 이 보다 더 낮게 제시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였기 때문이다(국가건강검진에는 이 기준이 적용된다).
대부분의 음주자들은 자신은 ‘적절음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음주자들은 음주 후 기억에 손상이 없고 음주로 인한 사고 경험이 없다면 술을 적당히 마시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적절음주’ 여부는 음주 후 음주자의 행동이나 상태가 아니라 음주자가 섭취한 알코올의 양에 의해 결정되며 그 기준 또한 생각보다 낮다. 따라서 실제로 음주자는 ‘적절음주’가 아닌 ‘과음’과 ‘폭음’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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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적절음주’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음주자들은 ‘적절음주’를 ‘이 정도의 술은 건강에 문제가 없다’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심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몸에 해로운 음주 수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간대사물질은 생리학적으로 사람의 몸에 이로울 수 없으며 한 잔의 술도 몸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술도 담배와 마찬가지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끊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