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0 No.1 2023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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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글. 고윤화

  • 전주직업트라우마센터 임상심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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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해를 돌아보며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라는 생각과 함께 2023년을 맞이했다.
2022년을 정리하기도 전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3년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 어김없이 들려온다. 누구든지 어렵고 큰일은 겪고 싶지 않고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삶을 살아나가다 보면 큰일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큰일 앞에 우리 몸과 마음을 얼마나 돌보고 힘든 마음을 어떻게 흘려보내는가에 대한 대답과 가르침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듯하다.

10년 이상 정신과 장면에서 큰일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범죄피해로 남동생을 잃은 누나의 끊임없는 죄책감, 서해대교 32중 추돌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가 아파트 복도 끝까지 화분을 빼곡히 놓고 집착스럽게 키우는 행동,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조차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8세 아이 등등이 지금 내 머리 잔상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환자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고인을 애도하고 있었다. 물론 그 나름의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건강하지 못한 애도는 끝없는 슬픔의 터널을 걷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 애도는 무엇인가?

    얼마 전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싶었던 할로윈 대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런데 다른 참사와 다르게 특별했던 건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는 점이다. 애도 기간? 트라우마 상담을 하고 있는 나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였지만 주변 사람들은 애도 기간이라는 단어가 영 낯선 것 같았다. 주변 친구들에게 “애도가 뭔지 알아?”라고 물으니 한 친구가 “그냥 슬퍼하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고 또 다른 친구는 “몰라 난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투덜거리는 대답도 들려왔다. 그 시기에 많은 예능과 콘서트들이 모두 중단되었고 축제 같은 행사도 멈췄다. 국가는 비통한 듯 슬픔을 표현하려고 애썼지만 이게 올바른 애도인가? 라고 생각하는 방법론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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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모든 행동에 뭐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 우리는 애도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 없고 애도가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큰 충격을 주었던 ‘세월호 참사’, ‘정인이 사건’, 10.29참사까지 이런 큰일 앞에 넋이 빠질 만큼 당혹스러운 사람도 있었던 반면, 참사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 속에 애도가 갖는 영향력은 별반 의미가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애도 상담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애도는 ‘잘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과 더불어, 불필요한 배설물을 흘려보내기 위한 노동’이라고 한다. 어느 책에서는 ‘애도는 침묵이 아니다. 애도의 시간은 죽은 자들과 죽음에 대한 해석의 시간이며, 그 사건에 대한 상징을 둘러싼 투쟁의 장’이라는 표현도 있다.
    심리학에서 애도 과정은 단순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 인지, 체험의 과정을 포함하고 새로운 세상에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과업을 처리해 내는 것이다. 애도는 슬픔 그 이상의 복합적 과정이며 사건이 주는 감정을 자기 나름의 방식에 맞춰 물길이 막히지 않게 안전하게 흘려보내고 의미를 찾도록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꼭 슬픈 이야기, 눈물 흘리는 표정과 같은 일관된 방식이 아니라 고인이 이제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추억을 회상하면 된다. 그것이 즐거운 활동이라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충분히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그 감정은 갇혀버린 고인물이 된다. 결국 과거에 묶인 채 자신을 원망하게 되고 이유와 사건조차 잊힌 채 그 감정만이 몸에 새겨지게 된다. 결국 감정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되거나 모조리 잊어버리는 파국을 맞이한다.

  • 죄책감에 대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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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 상담을 하다 보면 건강하게 애도를 하기 위한 과정 중 가장 걸림돌이 되는 감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죄책감이다. ‘만약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또는 ‘했어야만 했는데’라는 생각으로 고통스럽고 고인을 돕거나 죽음을 막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던 것을 깊이 후회한다. 사실상 고인과 그 사건에서 아주 먼 사람들조차도 도의적 책임으로 힘들어한다. 그러나 애도 과정이 건강하게 흘러가기 위해서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죄책감은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정상적인 도덕적 감정이며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외상 후 반응 중 하나이다. 참사에 대해, 부상자나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것이자 자신의 생존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도의 결과일 수 있다.
    또한 고인의 존재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사람이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죄책감을 갖는 것이 고인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죄책감을 강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당신이 희생된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받아드려야 한다. 사실 그 당시 상황은 명백히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며 그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어둠을 온전히 감당할 필요도,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죄책감으로 위축되어있는 자아(self)에게 비난보다도 자기연민을 갖고 보듬고 토닥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죄책감의 짐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에 좋은 일,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하고 또 격려해야 한다.

  • 애도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애도의 끝은 어디인가? 고인을 기억하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슬프지만 고통스럽지 않은 상태, 그리고 스스로가 고인이 없는 삶을 다시 사랑하고 미래를 꿈꾸고 새로운 세계를 재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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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상태는 물리적 시간이 흐른다고 그냥 도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인과 사건, 그리고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야 힘겹게 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와의 새로운 연결감이 생긴다.만약 이 연결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남아 있는 자의 슬픔이 더 처절하지 않고 가장 극심하게 뿜어져 나올지 모를 분노와 두려움을 견디게 해주며 누군가에게 비밀로 간직해야 했던 조각난 과거의 일들을 탐색하는 동안 자신을 온전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무기가 된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용기이자 희망이며 지혜이다. 다만 애도의 끝을 달리는 과정은 모두 다 속도와 방향성이 다르다. 오직 자신만의 방법으로 슬픔을 통과하며 또 다른 삶을 이루어낸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너무 빨리 잊으려고 하지 말자.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 세상은 묘지 위에 있고, 죽은 자는 산 자의 틈 속에서 기억으로 영원히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