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9 No.04 2022. 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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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맷집을 키우기

정순영

글. 정순영 경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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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도 살아내고 있습니다.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열심히 일을 합니다.
문명의 혜택으로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오감(五感)으로 차를 마십니다.
커피 맛도 중요하지만 분위기, 향기, 주변 풍경 등으로 티타임(tea time)을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맛나는 세상에서 맛깔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맛보다 삶에 쓴맛을 느낀다고 합니다.
즐길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가진 것 같은데,
우리는 아직 해야 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하기만 하면 될 텐데’ 라고 달려갑니다.
꿈이든 소원이든, 다양한 개념으로 우리들을 움직이게 합니다.
마치 기계가 스위치 하나로 작동되듯이, 누군가에 의해 나도 모르게 재촉 받으며 삽니다.
정작 누군가인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 지도 모르면서 떠밀러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부족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여깁니다.
살아간 다기 보다 살아낸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더 와 닿습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를 보살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살맛나는 세상에서 쓴맛을 느끼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맛나는 느낌을 가지려면 우리는 I KNOW/ LET GO를 해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것은 나를 알고 나를 비우는 방법으로 자신의 맷집을 키우는 것입니다.

마음의 맷집(I KNOW/ LET GO)

  • I KNOW(나를 알자)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세밀하게 보기 시작하고, 그리고 비우는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나는 항상 긴장한다.

      긴장과 이완이란 단어로 현대를 사는 우리를 본다면, 하루하루를 긴장감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긴장하고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긴장하며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잘 산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완과 긴장의 개념 정의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원래 몸과 마음이 긴장된 상태로 살아오기 때문에 심신의 이완과 긴장을 구분하지 못하고, 어떤 상태인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항상 긴장하고 살아가는 자체를 평상시 모습이라 여깁니다.
      이제 우리는 좀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 살맛 나는 세상과 쓴맛 느낌

      우리 사회는 문명, 산업화, AI시대 등으로 편리해져서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줍니다. 너무 편해지고 너무 누리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안락함, 편리함을 추구하는 살맛 나는 세상에 일원으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 살맛 나는 조건들을 제시하며 빨리 빨리 결과를 내놓기를 바랍니다.
      과정보다 결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습니다. 어디든 목표지점을 찍고 갑니다.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는 것으로 결과 중심으로 우리를 몰아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이런 살맛 나는 세상이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더 좋은 물건들도 보이고, 더 잘사는 사람도 옆에 있습니다.
      누가 누가 잘하는지도 수시로 평가 받습니다.
      엄청나게 살맛 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쓴맛을 느낍니다.

    • 선입견 속에 나

      우리의 정신기능은 일을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합니다.
      특히 생각을 많이 하고, 감각에 몰두하고, 감정에 휘둘리고, 기억에 있는 많은 것들을 지속적으로 떠올려, 비교 판단하며 우리 앞에 장애물로 놓곤 합니다.
      특히 뇌(brain)는 많은 정보를 나름대로, 빨리 분류하고 정리하기 위해 틀을 만들어 줍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의 틀이고, 지속적으로 고정 시키려 합니다.
      뇌는 정신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고 일을 적게 하려고 하다 보니, 빨리 틀을 만들고,
      우리는 그 틀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인지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이미 아는 것처럼 판단합니다.
      뇌의 기억장소에서 이 전에 기억해둔 것과 빨리 비교 분석하여 잘 안다고 판단합니다.
      변하고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과거의 기억으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편견으로 세상을 보고, 선입견을 가지면서, 마치 자신만이 옳고 빠른 결정을 하는, 사회적응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지합니다.

    • 노는 것도 일 하듯이 열심히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많이 하고, 빠른 판단을 하는 것을 공부하고 학습해왔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하여 나름대로 틀을 만들고 정리하고 빠른 판단을 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우등생이고 잘살아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과 휴식을 구분 안하고 휴식도 일을 하듯이 합니다.
      그리고 힘들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살아가는 데는 정답이 없는데 마치 정답이 있는 것으로 살아냅니다.

    • 지금도 나는 뗏목을 들고 간다.

      이 사회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라기보다 내가 챙겨서 잡고 있으면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합니다.
      강 건널 때, 필요한 뗏목을 강을 건넌 후에도 들고 가면서 힘이 든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뗏목을 지고 갑니다. 아무도 권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에서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뗏목을 지고 있는 것도 자신이고 놓을 수 있는 것도 자신입니다.
      필요할 때 열심히 챙겨서 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스트레스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잡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 나도 개(dog)가 아니고 사람

      스트레스라고 여기는 상황들이 많을 것입니다.
      각자 쓴맛 나는 이유도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놓입니다.
      오늘도 내게 슬픔을 주는 일이 있을 것이고 내게 기쁜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각자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정의한 상황이 주어집니다.
      “누구는 덜 힘들고, 나는 더 힘들고, 누구는 최악”
      상황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정해준 것일까요?
      상황이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남의 탓을 해봅니다.
      내가 잡고 있고 내가 놓아야함을 압니다.
      하루도 수없이 많은 상황이 주어지고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갑니다.
      어느 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옆집 사람들이 잘되면 배가 아프고, 내가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화가 나고 억울하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 화가 나지 않고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개(dog)다.“
      이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다양한 상황에 놓이고 많은 생각을 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 여인숙에 손님이 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나’라는 여인숙이 있습니다. 마치 여인숙에 손님이 찾아오듯이 감정이 내게 찾아옵니다. 여인숙에 손님이 오지 않으면 여인숙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런 것처럼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면입니다.
      지금도 다양한 감정들이 손님으로 자신의 여인숙에 찾아올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지 마세요” 라는 주문을 받습니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쉬지 않고 떠오릅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생각은 나는 것이며, 수시로 변하여 잡아 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억누르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잡아두고 괴로워합니다.

    • 변하지 않은 것은 있나?

      주변이 변합니다.
      수시로 바뀌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여깁니다.
      영원할 것으로 여기고 생각합니다.
      변화에 대하여 당황해하고 힘들어 합니다.
      영원히 변하지 말자고 약속하며 변한다고 괴로워합니다.
      세상이 변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고 진리일 수 있는데.......

  • LET GO(내려놓자)

    맷집을 키우는 것은 인식하고 놓는 작업(I KNOW/ LET GO)입니다.
    자신에게 힐링이 필요함을 알고 자신이 변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즉, 지금 여기서(now & here )에서 알고 비우는 작업입니다.
    나를 알고 나를 비우는 과정은 분리되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맷집이 튼튼하다는 것은 결국 알고, 비우고를 잘하는 것입니다.

    • 항상 긴장하고 있는 나 알기

      긴장된 우리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완을 할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자신의 자리에서 긴장됨과 이완됨을 알고 상황에 맞게 모드(mode)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마음의 맷집입니다.

    • 원숭이 같은 마음을 가진 나를 데리고 살기

      우리 마음은 여기 저기 뛰어다닙니다.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뇌(brain)는 말을 잘 듣습니다.
      습관화되면 마음은 편안해지고 그대로 따릅니다.
      뇌는 말 잘 듣는 비서로, 내게 지시도 합니다.
      우리는 비서 말을 잘 들어야 편안하다고 여깁니다.
      오늘도 비서에게 얽매어 편견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원숭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므로 사장인 내가 비서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지 확인하곤 해야 합니다.
      평소 우리가 I KNOW/ LET GO에 익숙해지면, 비서의 지시대로 살지 않습니다.
      강을 건널 때 필요한 뗏목은, 강을 건넌 후 버리는 습관을 평소에 내가 합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내가 잡고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 않고,
      내가 놓을 수 있습니다.

    • 마음 공간을 두기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을 합니다.
      놀 때도 일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노는 때도 다시 일이 됩니다.
      일을 할 때 열정을 다하고, 놀 때는 노는 것에 열심히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일할 때와 휴식 사이에 잠시 마음의 공간을 두는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고 주변을 살핍니다.
      바람 소리, 하늘의 빛깔, 여름 냄새 등 잠시라도 노는 연습을 해봅니다.
      그리고 일에 집중합니다.
      맷집이 튼튼하면 마음의 공간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볼 수 있고, 자유로운 자신이 됩니다.

    • 나의 아바타(avatar)에게 맡기기

      현재를 살아내는 나를, 나라고 집착하지 말고 나의 아바타로 본다면 생활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을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now&here )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
      지금 여기서 나의 감정을 안다.
      지금 여기 어제의 내가 아님을 안다.“

      아바타가 모든 것을 하고 있음을 순간 순간 압니다.
      아바타에게 생각이 떠오르고, 여인숙에 손님이 오듯이 감정이 드나듬을 압니다.
      아바타가 행하고 해결해 주니 나는 행복합니다.
      나라는 집착에서, 나의 아바타에게 맡겨봅시다.

    • 마음의 맷집을 가진 나

      평소 자신이 긴장되었는지 확인하고, 자신만의 이완 방법을 익힙니다.
      그리고 순간순간에 주의집중하고, 그 순간을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고 즐기는 것입니다.
      내 아바타는 열정을 쏟아 일을 하고, 열심히 놀아줍니다.
      그리고 아바타가 살아냅니다.
      그래서 나는 살맛 납니다.
      맷집이 튼튼한 나는! 지금 여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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