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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과 흉부방사선 검사

글. 오재일

  • 박애병원 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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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방사선 검사는 국가건강검진의 기본항목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학생검진 시 흉부방사선 검사를 받는다. 채용검진에도 대부분 흉부방사선 검사는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흉부방사선 검사는 왜 할까?

흉부방사선 검사를 통해 의사는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폐 질환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심장 질환도 찾아낼 수 있다. 흉곽의 이상과 골절 여부를 볼 수 있다. 많은 수검자들이 흉부방사선 검사의 목적이 폐암의 조기 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학생검진에도 흉부방사선 검사가 포함된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폐암 발생 위험이 거의 없는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폐암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인가? 폐암 검진은 국가 암검 진에 포함되어 있으며 검사에는 흉부방사선이 아니라 저선량 CT가 이용된다. 건강 검진에서 실시하는 흉부방사선 검사의 목적은 결핵 감염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다. 다른 질환들은 부수적으로 발견되는 것이지 흉부방사선 검사의 본연의 목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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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은 크게 활동성 결핵과 잠복결핵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결핵과 관련해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모두 활동성 결핵이다. 뚜렷한 원인 없이 기침이 2-3주 지속되는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 의심하며 전염성이 있다. 따라서 환자는 약 복용 시작 후 1주일 정도 격리하여야 하며 환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검사도 필요하다. 흉부방사선 검사 단독으로 진단하지는 않으며 객담 검사를 같이 실시한다. 잠복결핵은 결핵균에 감염은 되었으나 균이 활동하지 않고 있은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호흡기 증상과 폐 손상이 없으며 흉부방사선 소견은 정상이다. 전염성도 물론 없다.

투베르쿨린검사(TST)나 인터페론감마분비검사(IGRA)과 같은 면역학적 검사로 확인한다. 잠복결핵은 증상이 없기 때문에 질병을 의심할 수 없으며 흉부방사선 결과도 정상이기 때문에 대상자를 특정해서 추가검사를 실시하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결핵 감염의 90% 정도가 잠복결핵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에는 의료기관 종사자, 공무원, 기숙사 입소자 등 제한된 인원에 대해서만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검진은 증상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증상이 있으면 검진이 아니라 진료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건강검진을 통해 결핵 유병율을 낮추고자 한다면 검사항목에 면역학적 검사를 포함시키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환자수가 많고 증상이 없는 잠복결핵이 검사대상이 되는 것이 그나마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물론 면역학적 검사를 매년 천오백만 건 이상 실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고려하면 이 방법이 현실적이지는 않다(면역학적 검사는 상당히 비싸다). 현재의 건강검진은 흉부방사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 나온 수검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잠복결핵을 찾아낼 수 없다. 결국 현재의 국가건강검진 시스템 안에서의 흉부방사선 검사는 전체 결핵 환자의 10% 정도인 활동성 결핵 환자를 찾아내는 데에 유용한 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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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결핵 검진 시스템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건강검진을 통해 감염성 질환을 찾아내는 것이 적절한가이다. 우리는 수년간 코로나19라는 감염성 질환으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였다. 그렇지만 결핵과는 달리 국가건강검진에 코로나19 항원 검사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별검사를 실시하였을 뿐이다. 활동성 결핵도 증상이 있다. 의사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들 중 결핵이 의심되면 그에 따른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이때에는 흉부방사선 검사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흉부방사선 검사를 통해 결핵 유병률이 감소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흉부방사선 검사로는 잠복결핵을 찾아낼 수 없으며 건강검진은 결핵의 전염을 막는 유용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1년 또는 2년에 한 번 실시하는 국가건강검진으로 활동성 결핵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건강검진을 통해 감염성 질환인 결핵을 예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감염은 개인위생과 백신접종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다. 검사의 효과가 있었으면 우리나라의 결핵 유병률이 20년 넘게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검진의 원리와 목적에 맞지 않는 검사가 효과적이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건강검진에서 실시하는 흉부방사선 검사가 결핵 발생률과 유병률을 떨어뜨리지 못하기 때문에 검사 항목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이 주장에 찬성한다. 다만 여러 사람이 모여서 생활하는 학교와 직장의 경우 주변 사람에게 전염될 위험이 있기에 이들 집단을 대상으로 한 흉부방사선 검사는 제한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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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방사선 촬영을 이용한 선별검사의 또 다른 문제는 방사선 노출이다. 흉부방사선 촬영은 거부감이 큰 검사는 아니다.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방사선에 노출된다. 현 시스템에서는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대부분의 성인이 1년 또는 2년에 한 번씩 방사선에 노출되어야 한다. 개개인의 의료상의 이익과 국가의 보건상의 이익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결핵 유병률을 낮추는 것은 보건상의 이익은 되겠지만, 증상도 없는 개인이 주기적으로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는 의료상의 불이익이다.

우리나라의 결핵 유병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으며 결핵에 의한 사망률은 3위이다. 우리나라 보건지표 중 가장 참담한 수준이다. 대규모 집단 선별 검사 보다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에 대한 결핵 검사 실시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잠복결핵 환자를 찾아내서 관리하고 치료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해야 결핵 유병률을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