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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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0 고혈압·당뇨병 유소견자 상담전략
글. 김은지
- 보건학박사, 경기도 고혈압·당뇨병 광역교육센터 팀장
사업장 보건관리자든 보건소 건강코디네이터든 고혈압, 당뇨병 환자 혹은 유소견자를 대상으로 건강상담을 할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경우는 언제일까. 많은 경우가 있겠지만 상담을 받으러 온 대상자가 상담에 소극적이거나 상담에 거부감을 보일 때가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건강상담의 경우 상담을 제공하는 상담자와 상담을 받으러 온 대상자 즉 내담자의 기대하는 바가 다를 때, 특히 그 기대의 차가 크면 클수록 상담자는 상담을 끌어가기 쉽지 않다. 실제로 2023년에 경기도 보건관리자 역량강화 교육과정의 교육생은 혈압, 혈당 수치가 진단 기준을 훨씬 넘는데도 병원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 대답은 잘 하지만 막상 실천하지 않는 경우, 검진 결과는 그렇지 않은데 본인은 건강하기 때문에 상담받을 필요가 없다고 거부하는 경우 등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 즉 내담자가 실제로 행동 변화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본인 건강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상담 진행을 거부하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담을 제공하는 보건관리자는 이미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준비를 마친 반면, 실제로 내담자는 문제 해결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준비란, 본인의 건강 수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는 물론, 그로 인해 앞으로 도전해야 할 여러 가지 건강 습관에 대한 준비까지 넓은 범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A라는 근로자가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체중이 늘어나고 혈압도 조금씩 올라가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A는 ‘혹시 내가 고혈압 약을 먹게 되면 어쩌나’, ‘콜레스테롤 약을 먹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진 후 받게 되는 건강상담에서 ‘당신은 고혈압 유소견자이므로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다. 건강검진 결과표에 있는 각 수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직은 젊으니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약 먹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현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고혈압 전 단계이거나 처음 고혈압 진단을 받은 사람의 경우 대부분 체중 조절과 식사 조절을 통해 혈압 낮추기에 도전하게 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못했던 사람이나 야식, 간식, 음주를 즐기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아마도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할 텐데-이라면, 체중 조절과 식사 조절은 곧 그동안의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또 그것을 장기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건강상담을 할 때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마음을 하나로 맞추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 상담자는 내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일을 먼저 진행해야 한다. 이를 동기강화상담(Motivational Interviewing)에서는 초점 맞추기(focusing)라고 하는데, 이때 상담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가 아니라 내담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담의 주제를 정하고 변화하려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초점 맞추기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관계 형성하기(engagement)’이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 협력적인 관계로 연결되는 과정으로 흔히 말하는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내담자의 경우 상담자의 태도와 상담 환경 등을 보고 이번 상담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게 되는데 상담자가 자신의 우군 혹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향후의 상담 과정에 긍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만약 건강상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건강상담 자체를 거부하는 내담자를 만나게 되면 관계 형성하기부터 천천히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음을 열지 않은 상대와는 어떤 상담도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건강상담을 거부하는 내담자와 관계 형성하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만약 상담 테이블에 앉자마자 ‘바쁘니까 대충 하고 보내 달라’는 내담자, 혹은 ‘내 건강은 알아서 잘 관리하고 있으니, 건강상담은 필요 없다’고 하는 내담자를 마주하게 된다면 당황하지 말고 현재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내담자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것, 그러나 보건관리자로서 유소견자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간단히 설명하자. 그런 다음 건강상담을 끌어가려고 하는 대신 ‘이렇게 오셨으니 그럼 건강검진 결과표는 잠깐 덮어두고 다른 이야기를 잠깐 나누는 것은 어떨지 물어보고, 내담자가 승낙한다면 날씨나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요즘 관심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자. 만약 내담자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면 본인이 하고 있는 건강관리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다. 옛 속담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관계 형성하기가 되지 않으면 어떤 상담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런가 하면 질환 관리를 위해 건강 습관을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행동 변화에 실패하는 내담자나 시도할 듯 말 듯 하면서 고민을 거듭하는 내담자는 아직 행동 변화에 대한 양가감정이 남아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행동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잘 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행동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나 행동 변화를 성공적으로 해낼 자신감이 없는 경우, 혹은 행동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럴 때는 할 수 있다고 격려하기보다는 왜 고민하는지 스스로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만약 잘 해낼 자신감이 없다면 왜 그런지, 지난번에 도전했을 때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혹은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만약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면 꼭 이번에 대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한 번 생각해 보고 다시 오라고 할 수 있고, 그 자리에 쉽게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한다면 지금 이야기한 것을 한번 글로 적어보라고 권해 볼 수 있다. 이런 양가감정 탐색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내담자는 비로소 자신이 갖고있는 양가감정의 정체를 마주하게 된다.
내담자가 건강을 위해 건강 습관을 변화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3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우선 첫째, 현재 고혈압을 관리하는 것이 혹은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본인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10점 만점에서 몇 점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만약 6점이나 7점, 8점이라고 하면 왜 그 점수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그 점수를 좀 더 올리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함께 물어보자.
둘째, 이번에 건강 습관을 변화한다면 성공할 자신감이 10점 만점에서 몇 점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이 역시 몇 점이라고 이야기하면 왜 그 점수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그 점수를 좀 더 올리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같이 물어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 셋째는 건강습관 변화에 도전한다면 시작일을 언제로 할 것인지 묻는 것이다. 만약 상담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시작일을 정한다면 행동변화단계에서 준비단계에 해당하지만, 만약 한두 달 뒤로 잡거나 몇 달 후, 혹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면 이는 아직 준비단계가 아니라는 말이니 내담자가 양가감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
체중감량이든 운동하기든 금연하기든 행동 변화에 도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경험한다. 처음 한두 번의 실패는 그다지 충격을 주지 않지만 아무리 작은 실패도 자꾸 경험하다 보면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기게 된다. 따라서 행동 변화 혹은 건강 습관 변화에 도전하는 내담자의 경우, 목표를 너무 크게 잡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필요한 어떤 행동을 실천할 수 있다는 확신 또는 유혹이나 충동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이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자기효능감(self-efficacy)라고 하는데 작은 목표를 설정해서 성공 경험을 갖는 경우 자기효능감을 쉽게 높일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대리 경험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발달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성공이라고 해도 직접 경험한다면 그 경험은 대리 경험보다 훨씬 큰 효과를 줄 수 있다. 실제로 규칙적인 운동을 할 자신이 없는 내담자가 1주일에 한 번 점심 식사 후 15분 산책하는 것을 목표로 했더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서 점차 산책 시간과 횟수를 늘리고 결국에는 주말에도 동네 걷기에 도전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2시간 동안 회의를 하느라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못 피운 사람에게 ‘2시간 금연한 것을 축하해요!’라고 했더니, 나중에는 회의가 아니더라도 2시간 정도 담배를 참거나 점차 금연 시간을 늘렸다는 사례도 볼 수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은, 약 먹기는 물론 운동 습관과 식습관 개선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대표적인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담자를 대상으로 행동 변화와 생활습관 개선을 목표로 상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고혈압, 당뇨병 유소견자 상담할 때는 상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들이 자신의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무엇인가 변화를 시도할 때 잘 해낼 자신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진짜 무엇인가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지 물어보자. 때로는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는 게 상담을 진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