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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세척제 급성 중독사고

박은정

글. 박은정 경희대학교 의예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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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3월 6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공장에서 근무하던 故황유미 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 후, 백혈병, 뇌종양, 유방암 등 각종 질병을 앓게 된 공장 근로자들이 모여 산업재해로서의 인정과 적절한 대책 마련을 삼성에 요구했고, 11년만인 2018년 11월 2일, 삼성전자는 "질병 피해자 전원이 2028년까지 차질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다 할 것이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사이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던 또 다른 근로자들도 재해로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계속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 급성 백혈병은 급성골수성백혈병과 급성림프성백혈병으로 나뉜다. 그 중, 급성골수성백혈병은 골수나 말초 혈액에서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골수아세포 (Myeloblast)가 20% 이상 차지하는 경우를 의미하며, 골수에서 암세포가 성장하면 정상 조혈세포의 분화 및 성숙을 억제하여 조혈기능이 방해 받게 된다. 이로 인해, 빈혈, 백혈구 수 감소, 혈소판 수 감소, 백혈구증가증이 발생하고, 그 결과 면역력 감소,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반도체 근로자의 산업재해는 우리나라에서만 보고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미국 컴퓨터 제조회사인 IBM에서 일하던 근로자들 중 백혈병과 림프종, 뇌종양, 유방암 등에 걸린 이들이 많았고, 여성 근로자의 경우 유산율이 1.4배나 높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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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산업재해 보상 합의 이후, 산업재해 발생률이 급격히 높아졌다고 한다. 갑자기 산업재해가 늘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산업재해 신고율은 그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업체와 심사기관이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급성백혈병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흥공장 1, 2, 3 라인은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한 1983년에 설립된 공장이었기에 시설의 노후화가 심했고, 6개월이라는 비교적 단기간에 준공되면서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로 인한 근로자들의 질병 발생까지 고려한 면밀한 사업장 설계가 용이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 급성백혈병 환자 발생이 최초 신고된 이후, 국가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삼성 반도체 3라인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와 국내 반도체 6개사의 제조 공정라인에 근무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건강실태 역학조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09년에는 고용노동부의 권고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반도체업계 보건관리 안전성 평가를 실시했고, 2010년에는 글로벌 안전보건 전문기관인 미국 인바이론(Environ) 사에서 반도체 공정 근로자의 근무환경을 재조사했다.

  •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에서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여 기간에 걸쳐 반도체 작업환경을 조사하였다. 그러나, 산재재해로의 진실 규명을 위해 다양한 과학적 검증을 통해 도출된 정부의 최종 입장은 "위험요소의 노출 수준이 매우 낮았고 일부 위험요소가 있다 해도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었다. 또한 회사에서 근무환경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근로자들의 근무환경과 근로자에게서 발생한 질환 (급성백혈병 등)과는 직접적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기에 산업재해로 인정받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2022년 마무리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외에도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었고, 또 현재까지 도출된 연구 결과들이 모두 실험동물을 이용한 것이라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여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의 질환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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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고인들에게는 매우 죄송스럽고 상황상 매우 부적합한 표현이지만 결론적으로는 다행히도 여기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근로자들에게서 급성백혈병이 발생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故황유미씨 외에도 같은 직종에 일하던 근로자 5명이 연달아 급성 백혈병을 앓았던 것이다. 특히 황유미씨와 2인 1조로 일하던 동료도 급성백혈병을 앓게 되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급성 백혈병은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4명이 걸리는 질환이다. 따라서, 같은 라인에 근무하던 근로자 5명이 동시에 이 질환을 앓을 가능성, 더 나아가 같은 조에서 일하던 동료 근로자 2인이 유사한 시기에 동일한 질환을 앓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나아가, 반도체 공정에서 이용되는 염산, 불산, 암모니아 등이 세정 과정에서 혼합되어 반응하는 경우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

  • 그 뿐인가? 2010년 5월 17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는 트리클로로에틸렌 (Trychloroethylene), 시너, 감광액 (PR), 디메틸아세트아미드 (Dimethylacetamide), 아르신 (AsH3), 황산 (H2SO4) 등 발암성 물질 6종과 자극성 위험물질 40여종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주로 세정, 식각, 사진 공정에 사용되던 물질들이며, 과거 故황유미씨가 근무하던 작업라인에서도 이들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반도체 포토공정에 이용되는 벤젠과 반도체에 이온을 주입할 때 사용되는 이온화방사선은 세계보건기구 (WHO) 산하 국제 암 연구소 (IARC)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물질이며, 감광제 및 '식각공정 (Etching)'에 이용되는 트리클로로에틸렌은 2급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다. 공장 가동 이후 지속적으로 공장 시설을 개선하면서 대부분의 공정이 기계화, 자동화되었지만, 공장 가동 초기에는 반도체 식각공정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이 직접 손으로 담갔다 빼기도 했다고 한다. 약 800종이 넘는 화학물질이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된다는 의미는 당연히 이 분야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화학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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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산재와 관련된 기사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그 중 ‘급식 조리 종사자들에게서 발생된 폐암이 산재로 인정받은 것이 2021년에만 13명이었다’,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근무하던 근로자가 첫째 아이에게 나타난 ‘차지 증후군’을 태아 산재로 신청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공장 블레이드 가공부서와 열처리반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가 작업 과정에서 노출된 절삭유 연기와 세척제로 인해 <무형성 빈혈>이라는 질환을 얻게 되었다’, 는 기사는 저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우리는 이들 물질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불행한 사고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우리 주변에서 벤젠을 사용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경우 드라이클리닝 세제에는 벤젠이 함유되어 있다. 마룻바닥 등의 접착제에도 벤젠이 있고, 방향제에도 벤젠이 함유되어 있다. 그 뿐일까? 벤젠은 다양한 화학제품의 전구체로 쓰인다. 즉, 벤젠에 의해 발생된 건강피해는 그 근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그럼, 벤젠만 피하면 될까? 2022년 2월 창원과 김해 사업장에서 세척제를 사용하던 노동자들에게서 급성 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조사 결과, 세척제를 제조하는 업체에서 올해부터 규제대상으로 분류된 디클로로메탄 대신 트리클로로메탄을 사용하고, 물질안전보건자료에는 디클로로메탄을 사용한 것으로 기재했다고 한다. 문제가 발생된 것은, 바로 이 트리클로로메탄이 1997년부터 환경규제물질로 지정되었고, 디클로로메탄보다 독성이 더욱 강한 물질이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해당업체에서는 유해물질 사용 시 국소배기장치의 설치 및 방독마스크 착용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아 작업자들이 더 높은 농도의 유해물질에 노출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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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밖에도 일각에서는 직쇄알킬벤젠술폰산나트륨 (LAS)와 알킬벤젠술폰산나트륨(ABS)은 환경 및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 그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더 나아가, 여름이면 발생하는 녹조류의 가장 큰 원인이 과거에는 축산폐수였으나 최근에는 가정이나 공장에서 사용한 세정제가 더 큰 영향을 나타낸다는 보고도 있다. 인체에 나타나는 독성은 노출농도와 노출기간에 의해 나타난다. 근로자들이 처하는 작업환경 내 유해물질의 농도와 비교할 때, 일반 대중들이 처하는 노출농도가 조금 낮을 뿐이다. 급식 조리 종사자들에게서 발생된 폐암과 비흡연 주부들에게서 발생된 폐암의 고리가 다를까?

  •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6.25전쟁 속 황폐화된 땅 위에서 너와 나 다 같이 힘을 모아 잘 살아보자고 외치던 새마을 운동이 있었다. 한민족의 성실성과 근면성을 토대로 우리는 매일 매일 풍요로워졌고, 석유 화학, 건설, 반도체 등의 산업성장 속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성장을 목표로 달려 오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환경과 건강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후회로 남기면 실패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계기로 기업이 근로자의 근무환경과 건강을 고려하는 성장 토대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변하기 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양을 조금씩 줄여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1)서울 아산병원 홈페이지 (질환백과, 의료정보)
  • 2)천연비누&합성세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합성세제의 독성, 강청비누
  • 3)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 4)한겨레21, 2020년 5월 2일, 삼성반도체 ‘발암성 물질’ 6종 사용 확인
  • 5)'삼성 백혈병' 보상 11년 만에 마침표…피해자 전원 보상. 한겨레. 2018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