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건강 사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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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의 치명적 그림자 - 질식재해 예방의 중요성
글. 기획조정국
- 직업건강협회

지난 5월 9일, 전북 김제시의 한 양돈농가에서 질식사고가 발생했다.
집수조의 수중펌프에서 이상음이 들려 이를 외부에서 꺼내던 중, 작업자의 휴대전화가 내부로 떨어졌다. 이에 근로자 한 명이 집수조 안으로 내려갔고, 황화수소에 중독돼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곧이어 동료 근로자가 구조를 위해 진입했지만, 역시 중독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이 사고로 총 2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5월, 한 제지공장의 백수탱크 내부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탱크 내부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1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동료 근로자들이 두 명씩 교대로 구조에 나섰고, 결국 4명 모두가 쓰러지거나 중독 증상을 호소했다. 이 사고로 총 5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안타깝게도 2명이 사망하는 참변으로 이어졌다.
두 사고 모두 밀폐공간에서 유해가스에 노출된 후 발생한 다수 재해자 사고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특히 구조에 나선 동료까지 피해를 입는 연쇄적 사고의 양상은 질식재해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계절 따라 찾아오는 위험, 봄철 질식재해
질식재해는 계절과 무관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봄철에 집중적으로 증가하는 특성을 보인다. 기온이 오르면서 밀폐공간 속 유기물의 부패 속도가 빨라지고, 이로 인해 황화수소(H₂S)와 같은 유해가스가 다량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 퍼진 이 가스를 단 한 번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근로자는 순식간에 의식을 잃을 수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질식사고는 총 174건 발생했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136명이 사망했다. 이는 일반 사고성 재해의 사망률(0.98%)과 비교하면 무려 41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처럼 질식사고는 흔하지는 않지만, 일어났을 때 치명적인 재해다. 그렇기에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는 질식재해를 "가장 조심해야 할 저빈도 고위험 재해"로 분류한다.
질식사고의 전형적 조건, 밀폐공간
대부분의 질식사고는 ‘밀폐공간’에서 발생한다. 밀폐공간이란 통풍이 어려운 구조로 인해 공기 중 유해가스가 쉽게 축적되고 산소가 부족해질 수 있는 작업 공간을 말한다. 정화조, 침전조, 하수관, 맨홀, 저장탱크, 집수조, 슬러지 처리장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밀폐공간이 현장에서 자주 접하지만 위험성을 간과하기 쉬운 장소라는 점이다. 특히 황화수소는 후각 마비 현상을 유발해, 작업자는 냄새를 통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유해가스를 흡입하게 된다. 산소농도가 18% 미만으로 떨어지거나, 황화수소 농도가 10ppm 이상으로 측정될 경우 해당 공간은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더욱이 구조 중 2차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에서 밀폐공간 사고는 더욱 위험하다. 누군가 쓰러진 것을 목격한 동료가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진입하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연쇄 질식’ 양상은 여러 사고 사례에서 반복되고 있다.
현실에서 외면되는 절차들
이러한 질식사고는 사실상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 작업 전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환기장치를 설치하며, 감시인을 배치하고, 구조계획을 마련하면 사고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절차들이 현장에서는 번거롭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단기 작업, 단순 점검 등으로 간주되는 작업에서는 “조금만 다녀오면 된다”는 인식으로 인해 절차가 생략되기 쉽다. 그러나 유해가스는 작업의 크기나 시간과 상관없이 존재한다. 실제로 5분도 채 되지 않은 점검 작업 중에 질식사고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귀찮아서 생략한 절차 하나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기술지침이 말하는 질식사고 예방의 기본
「밀폐공간 위험관리에 관한 기술지침(KOSHA GUIDE X-68-2015)」은 밀폐공간에서의 질식재해 예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절차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 밀폐공간의 정의 및 목록화: 작업장의 밀폐공간을 사전에 파악하고 관리 리스트를 작성
- 작업허가서 작성 및 승인: 출입 전 안전보건 주관부서의 허가를 통해 유해공기 여부 확인
- 감시인 배치 및 역할 명확화: 출입자와 통신 유지, 비상 시 대피 유도
- 구조계획 사전 수립: 외부 및 내부 구조법, 필요장비 구비, 구조팀 훈련
- 정기적 교육: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교육 이수와 반복 훈련
이 지침은 단순한 문서상의 권고가 아니다. 현장에서 지켜져야 할 생명 보호의 최소한의 기준이다.
다시 기본으로, 다시 사람으로
질식사고는 소리도, 예고도 없이 일어난다. 작업자는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동료는 급히 구조에 나서다 함께 쓰러진다. 이 비극적인 반복을 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고 이후의 대응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귀가가 늦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그 ‘한 번의 실수’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질식재해는 예방이 전부다. 그리고 예방은, 결국 사람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