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건강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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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정신건강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
글. 김인아
- 한양대학교 직업환경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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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 중요성
정신건강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직업건강 문제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열악한 작업환경은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모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직장 내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괴롭힘과 따돌림은 정신건강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작업장에서의 정신건강 문제는 생산성의 차원에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우울증과 불안은 전세계적으로 매년 1조 달러의 생산성 손실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정신질환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건강과 생산성 측면에서 4달러의 이득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1).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문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는 산재보상 문제에 관심이 높았던 반면, 고소득 국가들에서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노동자의 정신건강 상태 자체에 관심이 높다. EU 인구의 약 38.2%가 정신건강의 문제를 겪고 있고 특히 노동가능인구의 정신질환에 대한 시점 유병율이 20~40%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2)3). 그래서 한국과 다르게 상병수당과 병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 상병수당과 병가 신청의 가장 흔한 원인이 정신질환이다.
일례로 영국의 경우 2014년 전체 상병수당 지급건 중 절반 가량이 정신질환 때문이었는데, 이는 1995년에는 20% 미만이었던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한 결과이다. 반면 상병수당 지급의 가장 흔한 이유였던 근골격계 질환은 직장복귀를 위한 제도로 대대적인 변화가 생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4). 이러한 흐름이 ICD-11의 개정에 번아웃을 포함하는 제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게 된 배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
WHO의 작업장에서의 정신건강 가이드라인
이러한 흐름에 따라 2022년 WHO와 ILO가 공동으로 작업장에서의 정신건강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정책 브리핑을 발간하였다. 한국직무스트레스 학회는 2023년 해당 가이드라인을 번역하여 공개하였다5). 이 가이드라인은 건강의 예방 및 관리에 대한 근거 기반 국제 표준 가이드라인 개발 방식인, 세계보건기구의 가이드라인 개발 핸드북에 따라 개발되었다. 각국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이드라인 개발 집단은 가이드라인 개발과 관련한 주요 연구 질문을 구성하고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해 정신건강에 대한 다양한 개입방식의 근거 수준을 검토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주요 개입 전략과 정책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는 정신질환이 있는 노동자에 대한 조직적 개입과 관리자 훈련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사회심리적 위험요인에 대한 조직적 개입, 노동자 훈련, 마음챙김이나 인지행동 기반 보편적 정신건강 개입, 신체 건강을 위한 육체적 활동, 정신건강 문제로 병가 중인 노동자를 위한 직무중심 치료와 근거기반 정신건강 임상치료의 병행을 조건부로 권고하였다. 다만, 현장에서 흔하게 쓰이는 정신건강에 대한 선별검사 프로그램은 잠재적인 혜택과 피해의 크기에 대한 판단이 불분명하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근무 중 선별검사 프로그램 시행여부에 대한 별도의 권고안을 만들지 않았다.
WHO의 표준 가이드라인에서 ‘강력한 권고’는 가이드라인 개발을 위한 전문가 집단이 해당 조치로 인한 긍정적 효과를 확신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조건부 권고’는 해당 조치를 시행할 경우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영향에 비해 클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강력한 권고는 가급적 수행을 하는 것이 적절하고, 조건부 권고는 사업장의 여러 가지 상황 등을 종합하여 부정적 효과의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둔 후 시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WHO 가이드라인에서 일관성 있게 권고하고 있는 것은 조직적 개입과 관리자 훈련이다. -
사회심리적 요인에 대한 조직적 개입의 방법
가이드라인과 함께 발간한 정책브리프에는 권고안의 핵심인 조직적 개입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조직적 개입은 육체적·정신적 건강과 삶의 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하여 직접적으로 노동조건에 초점을 맞춘 실천 방안을 계획할 것을 권고한다. 이는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심리적 위험을 평가 및 조정, 완화 또는 제거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근무 일정 배치의 유연한 조정, 직무와 관련한 여러 결정 사항에 당사자를 참여시키는 것, 일-가정 균형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도록 업무 부담과 근무 일정을 조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자살 예방과 관련해서는 농약이나 약물 등 자살 수단에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사업주가 검토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으로는 직무내용과 설계, 업무 부담과 속도, 업무 스케쥴, 직무 자율성, 작업환경과 도구, 조직문화, 사람 사이의 관계, 조직 내 역할, 경력개발, 일-가정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있다. 여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다양한 사회심리적 위험에 대해서 조직적 개입을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직무 설계, 직무일정, 직무 조직과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노동자 참여적 접근, 직무 순환, 근로시간 및 교대근무의 제한, 달성가능한 목표와 마감일의 설정, 적절한 직무 요구, 안전한 수준의 인력배치, 유연한 직무 일정 배치와 휴가 계획, 전형적이지 않은 시간에 근무하는 경우 복지 시설 및 지원, 빈번하고 개방적인 소통, 안전보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작업환경과 설비를 위한 투자, 불공정한 처리나 공격적 행동을 다룰 수 있는 조직적 틀 구성, 노동자들의 대표에 대한 접근을 포함하는 노동자 지원, 노동자들 사이에 또는 그들의 대표자들 사이에 의미 있는 협업과 상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경력개발을 위한 공정하고 좋은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것, 돌봄 역할이 있는 노동자에 대한 지원 등도 그 좋은 예이다. -
관리자 훈련
두 번째의 강력한 권고는 관리자에 대한 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 훈련의 목표는 관리자를 정신건강 관리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관리자 훈련은 정신질환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것이 아니며, 치료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해당 노동자에게 적절한 지원처를 안내하는 시기와 방법을 아는 것이며, 직장 내 정신건강에 대한 조치를 기꺼이 옹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신건강을 위한 관리자 훈련은 관리 프로그램이나 리더쉽 커리큘럼 또는 입문 교육 등 관리자로서의 직무 시작 전 교육의 일부에 포함할 수 있고, 관리자 업무 수행 중 실무 교육으로도 진행할 수 있다. 사업장과 노동자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형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에 대한 훈련보다 관리자에 대한 훈련의 권고 수준이 높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관리자 훈련에는 1)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직원을 인지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법, 2) 열린 의사소통과 적극적인 경청과 같은 대인관계 관리 기술의 활용, 3) 포용적이고 서로를 지지하는 직장 문화의 장려, 4) 직장 내 정신건강을 위한 조치에 대해 상층부의 지지 표명, 5) 사회심리적 위험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이를 예방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파악, 6) 경우에 따라 노동자가 대표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
정신건강을 위한 사업장 구축을 위한 기초
지금까지 주요한 개입의 전략 몇 가지를 소개하였다. 이 외에도 사업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관리 정책과 전략들에 대해서는 WHO의 가이드라인과 WHO·ILO의 정책 브리프를 참고하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 도입을 위한 사업장의 노력을 위해 가장 우선 해야 할 것은 리더쉽, 투자, 그리고 권리에 대한 이해이다. 작업장에서의 정신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에 정신건강에 대한 특정한 정책과 계획을 포함하는 것이 좋다. 또한 안정적인 재정적 지원과 자원을 제공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완전하고 효과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한국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관리는 일부 대기업에서만 진행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낙인 우려가 크고, 일부 전문가의 역할만으로 제한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심리상담 등 개인적 스트레스 관리와 개입 등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가이드라인에서는 개인적 개입에 대한 효과는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노동자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조직적 개입과 관리자 훈련이 현재까지 가장 중요한 권고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 국내 사업장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이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직까지 노동자의 안전보건문제가 사업장 운영에 있어 우선순위가 높지도 않고, 노동조합 등 노동자 대표의 역할이나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다양한 의사소통의 창구를 다양하게 마련하고 이것을 노동자들의 권리로써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보건관리체계 내에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주요 의제로 다루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을 하는 것이 노동자 정신건강을 위한 기초이다.
참고문헌
- 1) Mental health at work. WHO. [Avialable at] https://www.who.int/teams/mental-health-and-substance-use/promotion-prevention/mental-health-in-the-workplace
- 2) Wittchen HU, Jacobi F, Rehm J, Gustavsson A, Svensson M, Jönsson B, Olesen J, Allgulander C, Alonso J, Faravelli C, Fratiglioni L, Jennum P, Lieb R, Maercker A, van Os J, Preisig M, Salvador-Carulla L, Simon R, Steinhausen HC. The size and burden of mental disorders and other disorders of the brain in Europe 2010. Eur Neuropsychopharmacol. 2011 Sep;21(9):655-79. doi: 10.1016/j.euroneuro.2011.07.018. PMID: 21896369.
- 3) OECD (2012),Sick on the Job?:Myths and Realities about Mental Health and Work, Mental Health and Work, OECD Publishing, Paris,https://doi.org/10.1787/9789264124523-en.
- 4) Viola S, Moncrieff J. Claims for sickness and disability benefits owing to mental disorders in the UK: trends from 1995 to 2014. BJPsych Open. 2016 Jan 13;2(1):18-24. doi: 10.1192/bjpo.bp.115.002246. PMID: 27703749; PMCID: PMC4995588.
- 5) 일터에서의 정신건강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가이드라인.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 2023. [Available at] https://ksos.kr/wp-content/uploads/2023/07/WHO가이드라인직무스트레스학회.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