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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이행의 애매모호

변호사. 정대원

  • 법무법인(유)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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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면서 가장 많이 갖는 의문은 “중대재해처벌법에 정한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어느 정도로 이행하면 의무를 다 한 것으로 판단 받을 수 있을까?”, “우리 사업 특성상 이 정도면 만에하나 중대재해 발생하더라도 대표이사 면책될 수 있을까?” 등이다. 이러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의무주체이자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는 ‘경영책임자등’이라는 자연인 개인과, 그 자연인이 준수해야 하는 의무 내용인 안전보건확보의무의 성격에 미스매치(부조화) 되는 측면이 있고, 그 의무의 성격이 사업의 규모 및 특성을 고려한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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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안전보건 확보의무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용하는 의무이고, 그러한 시스템은 인력, 시설, IT 등 안전보건에 관한 기업 인프라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안전보건관계법령의 경우 해당 의무를 이행한 주체가 특정될 수 있는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하고 있는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하는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9호에 따라 제3자에게 업무를 도급, 용역, 위탁하는 단계에서 상대방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과 기술, 계약금액에 반영될 안전·보건을 위한 관리비용 등에 관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체계, 곧 도급, 용역, 위탁 관리 시스템은 경영책임자가 단독으로 하거나 직접 할 수 있는 의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 주체이자 처벌 대상을 경영책임자 개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서 혼란이 초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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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안전보건 확보의무는 동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안전보건관리체계란, 기업 스스로 사업장 내 위험요인을 발굴하여, 제거, 대체 및 통제방안을 마련·이행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체계를 말한다. 즉, 안전보건은 개념적으로 ‘완벽하다’라는 수준을 상정하기 어렵고,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도 이처럼 안전보건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개선·발전시켜나가는 것을 전제로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시행령에서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내용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ㆍ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고, 해당 업무절차에 따라 유해ㆍ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루어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만약 한번의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절차를 통해 완벽한 안전보건 수준이 갖춰질 수 있다면 반기 1회 점검하라는 등의 주기적인 의무로 규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의무 이행의 수준이 동태적으로 발전해 가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한 특정 시점에 의무 이행 여부를 판단하다 보니, 혼란이 초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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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규정하고 있듯이 안전보건 확보의무는 ‘사업의 특성과 규모를 고려하여’ 그 의무이행 수준이 결정되어야 한다. 중대재해 위험이 큰 건설업이나 조선업 등 업종과 중대재해 위험이 낮은 금융업, IT 등 업종에 대해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수준이 같아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도 안전보건 업무를 총괄·관리하는 전담조직을 마련할 의무를 규정하면서,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이고 산업안전보건법상 두어야 하는 전문인력이 3명 이상인 경우에 한정하고 있는 것도 사업의 특성이나 규모에 따라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수준이 달라지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개별 기업마다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의 수준이 달라지다 보니, 처벌 대상이 되는 수준을 평가함에 혼란이 초래된다.

이상과 같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특성 때문에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수준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안전보건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기업에 대표이사로 선임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기업에 대표이사로 선임되어 안전보건관리체계의 미흡한 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열심히 조치를 취하던 중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비교할 때 후자의 대표이사에 대한 처벌 필요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을까? 대표이사가 CSO(안전보건총괄임원)를 선임한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경영책임자에서 배제되고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의무 이행을 다하였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안전보건에 관한 전문성이 부족한 대표이사가 CSO를 선임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수립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는 일응의 조치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노동부에서도 강조하듯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보다 중대재해 예방에 목적을 두고 노동환경 전반의 안전보건 수준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운용될 필요가 있다. 역량있는 대기업들은 과도하게 (그러나 형식적인 측면에 집중해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보완해 가고,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을 포기해 버리는 경향도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성격을 충분히 고려하여, 기업들이 그 사업의 특성 및 환경에 맞춰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보완·개선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부터 50인 미만 기업에 대해서까지 확대 적용되었는데, 위와 같이 법 체계 자체로 인해 의무 이행에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더라도 사업장의 위험요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부에서 배포하는 중처법 매뉴얼이나 활용서식 등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책임자 자연인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상,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해당 기업에 얼마나 완벽한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구축되어 운용되고 있는지만을 기준으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을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해왔는지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