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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사회! 분노감정으로부터 자유롭기!
글. 오윤선
- 한국성서대학교 (교육학박사/상담학박사)
10년 전에 “피로사회”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었다면 최근에는 ‘분노사회'라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음을 본다. 요즘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 즉, 간헐적 폭발성 장애(분노조절장애)로 파생하는 잔혹한 범죄 뉴스들이 끊임없이 보도되며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분노조절장애(한국질병분류코드 F63.8)’ 1차 진단을 받은 진료 건수는 1만869건으로 2018년(9,455건)보다 15% 늘었다. 같은 기간 진료실을 찾은 환자도 1,917명에서 2,101명으로 약 10% 증가했다. 사회적 낙인 등을 이유로 정신과를 기피하는 사회적 풍토를 고려한다면 잠재적 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분노는 인간의 기본 감정 중 하나로, 사적 경계의 침해를 받게 될 때 생존과 보호라는 본능적인 반응에서 비롯된 충동성이 강한 감정이다. 또한 희노애락(喜怒哀樂) 가운데 가장 감정 소모가 많고 조절하기 또한 쉽지 않다. 분노의 감정 이면에는 존중받고 싶은 강렬한 욕구의 좌절이 지배하기 때문에 의지력으로는 다루기 힘들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경계선을 만들지 않으면 제어가 잘되지 않는다. 따라서 분노감정의 조절과 절제에 실패했을 경우 자신의 건강과 인간관계 문제는 물론 파괴적 행동을 유발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분노감정이 이와 같은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노감정은 강력한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으로 개인의 가치 및 기본적인 신념을 보존하려는 의지와 사회질서를 바로 잡고자 하는 순기능적 동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분노의 신경메커니즘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진단분류체계 DSM-5에서는 제외되었지만, DSM-IV(1994년)에서는 한국 문화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문화 관련 증후군인(Cultural syndrome)‘화병(hwa-byung)'을 우리말 그대로 등재할 만큼 분노감정은 한국 문화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증상으로 보았다. 즉, 우리나라 사회문화 구조에서 더욱 많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화병(火病)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 90.18%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화병을 앓은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분노에 대해서 신경메커니즘(neural mechanism on anger)으로 살펴보면, 편도체(Amygdala)가 인간의 뇌 기능 가운데 분노를 포함한 감정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편도체는 경계에 위협이나 도발이 감지되면 매우 활성화되어 신체에 투쟁-도피(fight-or-flight) 반응을 통해서 분노 경험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리고 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가운데 복측 전두엽 피질(VLPFC)은 감정 조절에 관여하고, 배측 전두엽 피질(DLPFC)은 계획, 의사 결정 및 충동 제어와 같은 실행적 기능에 관여한다. 또한 변연계의 한 부위인 전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 ACC)는 충돌을 모니터링하고 오류를 감지하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 개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면 분노를 경험하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또한 대뇌섬 피질(Insular Cortex)은 신체 감각과 정서적 경험의 통합에 관여하여 화가 나면 심박수 증가, 근육 긴장 또는 열 발생 등 같은 신체적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코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방출과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를 포함하여 다양한 자율신경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 신체가 인지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한다. 이와 더불어 세로토닌과 도파민(Serotonin and Dopamine)같은 신경 전달 물질은 분노의 강도와 지속 기간, 분노를 유발하는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감정 처리 및 기억 형성에 필수적 역할을 하는 변연계(Limbic System)는 외상적 경험이나 해결되지 않은 정서적 문제를 기억함으로 만성 분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분노의 신경 메커니즘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기능이 겹칠 수 있다. 더욱이,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뇌 구조와 기능의 개인차도 사람들이 분노를 경험하고 조절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분노의 심리 및 내외적 촉발요인
분노의 촉발 원인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대표적인 심리학적 이론과 내외적 요인을 중심으로 종합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분노의 발생 원인은 과거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경험했던 욕구좌절의 불쾌한 감정이 현재 부정적인 자극을 주는 대상에게 투사하여 대상을 파괴하는 공격 활동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학습 이론가들은 분노를 사회적인 학습의 결과물로 생겨난 행동이라고 본다. 또한 인식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주위 상황을 잘못 판단함으로써 상대방의 행동을 잘못 받아들이고, 스스로 잘못된 결론을 내려서 화를 낸다고 본다. 또한 생리심리학자들은 분노의 원인이 유전 인자의 구조(gene structure)와 혈액화학(blood chemistry), 혹은 두뇌질환(brain disease)에 비롯된다고 본다.
둘째, 분노의 내외적 요인 가운데 내적요인으로는 낮은 자존감과 좌절, 완벽주의(perfectionism), 죄책감, 거절감 혹은 상처 등을 들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위협을 느끼고, 두려움과 상처, 질투가 쉽게 드러난다. 그리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 사건 혹은 물리적 장애가 나타났을 때 다시 말하면, 제지를 당하거나 창피를 당하는 식으로 좌절당했을 때 분노하게 된다. 또한, 완벽주의 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완전’에 미치지 못할 때 분노를 초래한다. 특히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의해서 거절당하게 되면 상처를 받고 분노와 적대감을 갖기 쉬운데, 상처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분노는 더욱 큰 위협과 분노로 악순환이 되는 경향이 있다.
분노의 외적요인으로는 분노학습, 갈등, 경쟁, 소음, 건강, 알코올 및 약물 오남용 등이 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분노 표현과 가족 간의 용납 상황을 보면서 자신도 어떻게 분노를 표현할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경쟁체제에서 뒤처지게 될 때 열등감과 불안감으로 아드레날린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감정이 민감해지거나, 각종 소음에 휩싸여 분노감정을 더욱 자극받기도 한다. 또한 개인적 고통과 피곤, 수면부족, 지나친 다이어트, 저혈당으로 인한 생화학적 변화, 생리 등은 분노감정을 자극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알코올과 약물 오남용 또한 분노를 촉발시킬 수 있다.
분노표출 선택과 조절 및 치료적 대안
분노감정은 애써 누르는 것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내면을 뒤덮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각 사람마다 표출하는 분노를 유형별로 구분해 보면 화를 겉으로 내지 않고 속으로 참는 억제형이 있는가 하면 화를 버럭 내거나 상대방을 위협 또는 강하게 비난하는 공격적 표출형이 있다. 그리고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유형으로 화가 날 때에 토라지거나, 고의적으로 귀찮아하여 감정이 있는 사람들은 피하고, 또한 뒤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 소극적 공격형이 있다. 그런가 하면 분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자신의 요구를 건설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건설적 자기 표현형이 있고, 분노 감정을 사라지게 하여 분노를 처리하는 유형도 있다.
분노는 인간의 기본 감정이기에 누구에게나 있지만 자기 스스로 분노 표출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을 잘 돌아보면서 훈련을 통해서 조절할 수도 있다. 분노감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촉발 원인에 따라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및 분노조절 기술과 같은 치료적 개입과 결합을 통한 적절한 통합적 접근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첫째, 충동 억제가 어렵고 위험 상황에 놓인 경우 특히 간헐적 폭발성 장애(분노조절장애)는 약물치료가 치료 옵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를 위한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은 다양하지만 주요 약물로 크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기분 안정제, 항우울제, 항정신병제 등이 있다. SSRI는 기분을 조절하고 분노 폭발의 빈도와 강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며, 기분 안정제는 중추 신경계를 진정시킴으로 충동적인 행동을 줄이고 기분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항우울제는 기분을 안정시키고 긴장을 완화시키는데 사용되며, 항정신병제는 뇌의 활동을 조절하여 분노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약물 사용은 심리치료와 분노 관리 기술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치료 계획의 일부로 사용해야 하고 약물과 복용량은 자격을 갖춘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여 각 개인의 특정 필요와 병력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심리치료 및 분노조절 기술을 통한 접근이 있다. 분노조절을 위해서 가장 많이 활용된 심리치료는 인지행동치료(CBT) 또는 합리정서행동치료(REBT)가 있다. REBT치료는 인지적 재구성을 통해서 비합리적이거나 왜곡된 사고 양상을 확인하고 논박을 통해서 이에 도전함으로써 적응적인 신념 체계와 왜곡되지 않는 사고 양상을 새롭게 구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분노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자기경계선을 만들고 자신에게 집중하여 비합리적 신념을 논박하고 왜곡된 생각을 수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실제로 분노를 통해 취하려는 요구들의 90%는 덜 중요한 것이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고 10% 정도가 가능하고 필요한 요구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 타인으로 부터 받은 상처(억압, 따돌림, 폭력 및 폭언 등), 분노습관, 분노 억제로 인해서 부정감정이 내재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분노가 표출될 수 있을 경우에는 이완기법을 통해서 신체의 모든 근육에 이완반응을 조건화시킴으로써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 활동을 감소시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 사용되고 있는 이완기법 가운데 분노조절을 위해서 관심을 받고 있는 것 중 한 가지가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심호흡은 감정의 브레이크로 감정과 생각을 분류시켜주고 중추신경에 영향을 줌으로 분노를 의도적으로 조절하는데 응급조치법이 된다. 특히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에 근거한 스트레스 감소(MBSR) 및 변증법적 행동 요법(DBT) 같은 경우에는 한순간 개인에게 나타나는 감정을 조절하고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그 효과성이 입증된 바 있다.
또한 1990년 말부터 분노조절을 위해 실시되고 있는 감정표현기법으로 이야기하기, 행동하기 및 동작표현하기, 미술치료, 음악치료, 영화와 드라마 활용 등 매우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확실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게 하는 자기 주장법과 강요가 아닌 요청하기,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요청을 거절하기 훈련,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담긴 대화 훈련, 분노 조절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 참여를 통하여 분노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분노는 충동성이 강하기에 분노감정이 생길 때 화가 난 장소에서 탈출하여 가능하면 빠르게 걷거나, 감사 프로그램(thanksgiving Program)과 분노조절을 위한 웃음치료기법 등도 유용할 수 있다.
분노는 인간의 생존과 보호를 위해서 지닌 기본 감정 중 하나이다. 분노는 전염성이 있어서 또 다른 분노감정을 만들고, 억제하여 누적시켜 쌓아두면 촉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하지만 분노감정을 건설적으로 흘러 보내고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바꾼다면 생산적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분노의 목적을 협력과 갈등 해결의 에너지로 사용하여 삶을 재정비하는 동력으로 삼고 자신의 감정 읽기를 통해서 늘 마음을 관찰하고 자신의 소중한 감정을 망치지 않기 위해 불편한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머감각과 공감능력을 키우는 등 지속적 훈련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적절한 쉼, 수면, 식습관, 스트레스 관리 등을 통해서 긍정적이고 건강한 마인드를 가지고 타인을 존중하며, 분노 감정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유발되는 감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으로 분노를 잘 조절해 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