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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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갱년기와 마주하다
글. 송경숙
- 대전근로자건강센터 국장
나에게 갱년기는 낯선 나와 오롯이 혼자 마주해야 하는 기간이었다. 호르몬의 변화가 가져오는 중년의 사춘기라 불리는 갱년기.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꽤 힘들었다.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한 관절염 증상으로 시작해서 무릎이며 발목, 허리 등 여기저기 아픈 곳이 돌아다니면서 생겼다. 갑작스럽게 등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훅 올라오면 땀이 쫙 났다가 식었다 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눈물이 났다.
이런 증상들쯤이야 ‘이제 나는 갱년기 여자야. 그러니 내가 신경질을 내거나 예민해져도 그러려니 하고 나한테 잘 해야돼’하고 가족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해 놓고 지내오던 터라 참을만했는데 갑자기 오십견이 오른쪽 어깨로 왔다. 오십견 통증은 그야말로 ‘악’소리 나게 했고 소스라치게 아팠다. 팔을 끼워 윗옷을 입을 수도, 버스 손잡이를 잡기도 어려웠고 청소며 빨래며 일상이 힘들어졌고 오십견과 함께 수면장애가 시작되었다.
- 오십견
- 갱년기
- 우울
- 엉덩이가 머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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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견
글. 송경숙소염진통제를 먹었는데도
어디로도 돌아눕지 못하고
뒤척인 밤머리 커진 자식들 무겁게 이고
속절없이 울렁이던 키 큰 가죽나무
기어이 큰 가지 하나
하얗게 찢어졌다소리 없이 내리는 장맛비가
그래서 더 무섭다무거운 밥상을 번쩍번쩍 들지도
자식을 예닐곱 낳아 키우지도 않았는데
왜 오십견이 왔을까요?아플 나이예요
이제 왼쪽도 아플 수 있어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의사의 말에나는 종일
울렁인다 -
갱년기
글. 송경숙오늘의 나는 아직도 수면 중이고
어제의 나만 잠에서 깨어
아침이 온 듯 안 온 듯
서성일 수밖에몇 달 동안 없던 생리가
반갑지도 않게
하는 듯 안 하는 듯 찾아와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내가 아프다연민의 커피를 내려
의무감처럼 마시다 보면
빨리 뛰는 심장이
오늘의 나를 데려오려나사는 게 금방 미지근해져
애꿎은 커피만
돌려세운다 -
우울
글. 송경숙낮잠이라도 자려고 잠깐 누웠다 일어났다
몇십 년을 일만 해오다가
집에 갇혔다타 놓은 커피는 향을 잃었고
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도
막막하게 놓여있다무엇이나 먹어볼까?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언제 샀는지도 모를 아이스크림이
냉동실에서
‘뭐가 문젠데?’하고 쳐다본다바나나 하나 집어 들고
껍질을 벗기다
그만두었다반쯤 벗겨진 속살의 부끄러움은 내 몫
다시 덮어주어도
바나나 속살이 운다
나 때문이다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
엉덩이가 머리에게
글. 송경숙얼굴보다 큰 엉덩이
무작정 들이밀고
씰룩씰룩
아줌마 춤을 춰양 손가락 하늘로 찌르면서
으쌰으쌰 아줌마 춤을 춰그 모습에 나도 내가 우스워
한바탕 웃고 나면
세상살이도 별게 아닌 것 같아우스워지지 않으려고
머리 꼿꼿이 세우고
머리로 엉거주춤 추지 말고엉덩이로 막춤을 춰
그러다 보면 알게 되겠지
머리보다 엉덩이가 더 큰 이유를.
오십견이 먼저였을까? 우울과 무기력이 먼저였을까? 그동안은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이 제법 좋다고 생각했다.
힘들더라도 하루 이틀 쉬고 나면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업무에 몰입하여 충분히 일을 해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어려운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갱년기가 되고부터는 사소한 스트레스가 오면 오는 것 자체가 싫어졌고 쉽게 지쳐갔고 활력은 아무리 해도 다시 올라올 줄 몰랐다.
그렇게 오십견과 같이 찾아온 우울함과 무기력증은 몇 달이고 기약 없이 내리는 장맛비처럼 나를 지치게 했던 것 같다. 커다란 우산을 써도 비의 알갱이가 우산 속으로 들어와 옷이며 신발을 무례하게 적시는 장맛비. 하루종일 습한 날씨로 마르지 않는 운동화를 내일도 또 모레도 다시 신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우울이 엄습해 오면서 나는 매일의 똑같은 일상이 권태로웠고 지쳐갔다.
권태감이 들면 변하지 않는 일터의 환경이나 업무가 지겨워졌고 불평을 하며 투덜거리고 그러면서 자주 남 탓을 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마주해야 하는 서글픔에 10년 이상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나를 돌봐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하는 이유를 붙여.
퇴사를 하고 나면 마음껏 쉬고 지친 마음과 몸을 추스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산책을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보고, 글을 쓰면서 마음도 달래보고, 오랜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친정 언니들과 한 시간씩 전화 수다를 떨어보기도 하였지만 찾아온 무기력감과 우울함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고 당황스러웠다. 인생의 교차로에서 파란불은 자꾸 켜지는데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몰라 울고 있을 때 나를 다독여 준 것은 사소한 단어 하나이다.
'갱엿기'
내가 만들어 냈으니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나는 어느 날 갱년기를 갱엿기라 부르며 갱년기를 비틀어 보기 시작했다. 갱엿기라 자주 부르면서 언어의 유희가 주는 유쾌함이 따라왔다. ‘언니 내가 지금 갱엿기와 싸우고 있어’라고 전화 통화를 하고, 일기장에는 ‘내가 갱년기를 갱엿기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쓰면서 갱년기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속성들에 욕처럼 들릴 수도 있는 단어를 붙여 우습게 만들고 보니 갱년기에 내가 겪는 증상들을 그리 심각하게 풀 이유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갱엿은 커피색을 띤 단단히 뭉친 엿 덩어리다.
어린 시절 시골 오일장에서 친정어머니가 설날 즈음에 사오시는 엿이 갱엿이었다. 양은냄비 뚜껑만한 갱엿을 두세 개 사오셔서 망치로 깨트려 부수고 가마솥에 넣어 뭉근히 끓인 다음 조청같이 녹으면 그것으로 과즐도 만들어 주시고 타래과도 만들어 주셨다. 내가 그동안 옳다고 믿고 만들어 낸 삶의 기술들,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경직된 사고들, 읽고 배워서 가지게 된 얄팍한 지식들, 앞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적인 조급함 등이 뭉쳐서 내 인생의 갱엿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의 갱년기에 대한 태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삶을 조금은 가볍게 바라보기. 그리고 삶을 조금은 유머 있게 대하기. 그러고 나서는 힘들다고 느껴지면 자주 막춤을 추기 시작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갱년기를 지나가는 중이지만 나 자신에게 조금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나비가 날기 위해서는 젖은 날개를 말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림에도 여백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지금 여백의 시간을 지나는 중인 것이다.
그래서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딱히 무엇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난 하루하루를 주어지는 대로 살아내는 중이다. 아직도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잠 못 드는 날에는 약을 먹기도 하지만 이제 나는 다시 애벌레로 돌아갈 수 없다. 날개를 말려 어디로든 날아갈 것이다. 그 길이 꽃길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