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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다가온
보건관리자의 길

김보배

글. 신길영 신춘 문예 에세이 최우수작품
힘찬종합병원 보건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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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이 너무 식상하다. "운명처럼~!"이라니 첫 사랑도 아닌데…
2021년 12월 말 , 코로나 팬데믹이 한참 정점을 향해 달려갈 시기, 코로나 위중증환자의 가용 병상수와 의료진 확충은 국가적 숙제였고, 이 위기상황의 극복을 위해 정부가 내린 행정명령의 구역에 내가 다니는 힘찬종합병원도 포함되었다.
척추관절전문병원으로 유명했던 본원은 보다 넓은 의료 영역에서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자 240여 병상의 종합병원으로 이전 개원한지 9개월차의 병원이었던터라 감염전담병동 개설이라는 행정명령을 이행해야만했고, 그 시작과 함께 나는 긴 세월 함께 했던 마취과 간호사의 주사기를 내려놓고 코로나 병동 오픈 전선에투입되었다.

열흘 남짓 남은 코로나 병동의 오픈 시기를 맞추느라 정신없이 지역 코로나 거점병원 벤치마킹을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감염병에 대한 얇팍한 상식만 있었던 나는 질병본부의 코로나 지침서와 감염병동 운영 매뉴얼 작성으로 일주일 넘게 날밤을 세워야만 했다.
열흘만에 3킬로그램이나 자동감량 되버린 내 몸무게가 보여준 치열함 덕분인지 우리 힘찬의 코로나 병동은 시기에 맞추어 정상 오픈 하였고, 병원 경영진과 직원들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코로나로 인한 지역사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 가는 시대의 어려움 극복에 일조하는 종합병원이 되었다.

레벨디와 N95로 중무장하고 일회용 도시락에, 매일 샤워로 부시시한 머리를 한채 퇴근을 하던 전담병동의 일상이 이제 익숙해질 즈음 갑작스런 병원측의 제안이 나에게 투욱~하고 던져졌다.

전쟁과도 같았던 코로나 병동 오픈 후 50일이 채 지나지 않은 2월 초의 일이었다.
"혹시 새로운 일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병원의 행정직에 속하는 보건관리직이 현재 전임자의 개인 사정으로 곧 공석이 될 것 같은데 꼼꼼한 성격과 잘 맞을 것 같으니 한번 배워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코로나 병동 오픈을 준비하며 만들었던 나의 오픈 타임 스케쥴을 눈여겨 봐두었던 행정파트 실무자님의 제안이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코로나 병동에 적응을 한 시점이라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나는 보건관리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병원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하지만, 며칠의 고민 끝에 나는 보건관리자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또 한번의 도전을 하게 된 이유는 이러하다.

  • 첫 번째

    지극히 원초적인 이유다. 왠지 행정직은 소히 말하는 칼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로나 병동의 관리로 매일 연장 근무의 연속이었던 나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자리 같아 보였다. 물론 그 누구도 나에게 칼퇴를 보장한다는 말은 없었 지만,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마치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

  • 두 번째

    코로나 팬데믹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 명백했다. 그러나, 보건관리직은 병원에 언제나, 꼬옥 있어야되는 자리라고 했다.

  • 세 번째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일을 좋아하고 즐거워한다.

섣부른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이유들은 내가 보건관리자로의 보직 이동을 결정하기에 충분했다.
2월 중순 전임자 보건관리 과장님이 잠깐 인수이계를 해주시고, 보건관리자로서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은 보건관리자를 "병원의 직원 건강 관리를 위한 양호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보건관리직의 업무를 조금 아는 사람은 "그거 법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찾아서 하면 할일이 엄청 많은 자리지~!" 라고 한다.
결론은 두 가지 다 참 맞는 이야기 같다.
양호 선생님이라는 표현에 덧붙이자면, 보건관리자는 사실 집안의 "엄마" 와 같다.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자식들을 위해 매일매일 관리해줘야 하지만 태도 잘 나지 않고, 또 미루고 안하면 표시가 확 나는~, 게으를 수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도 없는 역할. 바로 엄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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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한달 보름 정도 이 일을 했지만, 보건관리자로서의 전문 적인 지식과 경험을 견고히 쌓음과 동시에 엄마와 같은 끈기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도, 잘 해낼 수도 없는 일이란생각이 들었다.
도급업체인 용역 미화원부터 평소 말을 잘 섞기 어려운 의사들까지 전직원의 건강을 챙기고, 일하다가 탈은나지 않을까 미리 들여다 봐야 하고,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지, 현장에서 고생하면서 남들에게 험한 말은 듣지 않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딱 나의 '엄마' 같은 자리가 보건관리자이다.

산업안전보건 위원회, 안전보건 교육, 유해위험방지 조치, 중대재해 발생 시 조치, 유해물질의 분류 및 관리, 근로환경의 개선, 근로자의 건강진단 및 건강관리, 고객응대 매뉴얼 등의 보건 관리자의 전문적 영역을 잘 해내기 위한 공부도 끊임없이 해야함 또한 초보 보건관리자인 나에겐 무거운 숙제이다.
아직은 턱 없이 부족한 나에게 직업건강협회와 보건간호사회 단체톡은 정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대한민국 전지역의 8, 000여명의 보건관리자들을 이끌어주고 많은 정보와 교육의 장을 제공해주는 직업건강협회를 알게 된 것이 큰 행운으로 다가온다.
내가 보건관리자의 길에 들어선 것을 두고 글의 서두에 운명처럼이라는 조금은 촌스러운 표현을 쓴 이유를 마지막에 써 보려고 한다.
지난 3월 초 직업건강협회의 중대재해처벌법 교육을 수강하며 난 잠시 소름이 끼쳤었다.
사실 병원은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기 쉽지 않은 사업장이고, 그래서 사업주들이나 직원들조차도안전에 오히려 둔감한 단체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건강하시던 시아버님을 안전보호 장치의 부재가 난무하는 굴지의 제철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잃는 가슴 아픈 일을 겪은 사람이다. 일찍 친정 아바지를 여윈 나에게 친아버지처럼 자상하셨던 시아버지의목숨을 대한민국 최대의 제철회사는 단 1초 만에 빼앗아가버렸다, 한치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으면서... 아버님은 제철회사의 잘라낸 쇳덩어리를 뭉쳐 만든 1톤도 넘는 위험한 블록을 용광로가 있는 공장으로 옮겨 하역하는 작업을 하는 도급업체의 중장비 기사셨다.

그 위험한 하적 업무를 진행하는데 안전관리자는 한명도 없었고, 그들은 천청벽력 같은 아버님의 사고사를 두고 돈 많이 벌려는 개인의 욕심이 불러낸 과적의 결과라 쉽게 치부하고 말았다.
도급업체라 산재도 적용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죽음은 아무런 항변도 못했던 우리 가족에게 9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슬픔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제철소 안의 사고 현장에도 상복을 입은 채 뛰어갔었고, 방송사에 제보도 해 보았었고, 같은 동료분 들께 도움도 요청해 보았으나 우리 아버님의 억울한 사고사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문득 교육을 들으며 난 뜻하지 않고 걷게 된 이 보건관리자의 길이 아버님의 사고사에 대한 내 무거운 짐을이렇게 돌려서라도 남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라는 뜻인가 싶어 잠시 숙연해졌다.
어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들을 골탕 먹이려는 법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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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어떤 대단한 기업주에게라도 공정 하고 정의롭게 적용되고 그것이 결국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기업정신이 되도록 만드는 기틀이 되고자함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병원이든, 건설현장이든, 산업현장이든 모든 근로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열심히 일한다.
그런 일터에서 직장인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웃으며 일할 수 있도록 밝은 가이드가 되어주는 것이 내가 새로 만난 이 보건관리자라는 운명이 아닐까 싶다.
아직 해야 할일이 너무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함께 라면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동행의 길에 직업건강협회가 있으니 지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보자. 보건관리자 신길영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