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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질식사고, 반복을 멈추려면
도시 인프라와 근로자 안전을 위한 새로운 시선

김미정

글. 백은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연구교수 직업건강협회 이사 대한건설보건학회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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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공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위기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밀폐공간 사고는 총 174건. 그중 재해자 338명 가운데 무려 136명이 사망하며 사망률은 42.3%에 달했다. 이는 일반 산업재해보다 수십 배 높은 수치로, 밀폐공간 사고의 치명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맨홀과 하수관로 같은 도시 기반시설에서 발생한 사고가 상당수를 차지하며, 이는 산업보건을 넘어 국민 생활안전 전반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과제임을 시사한다.

가장 최근인 2025년 7월에도 인천에서는 하수관 상태를 점검하던 작업자가 맨홀 내부에서 실종되었고, 결국 사망으로 이어졌다. 같은 시기 전주 제지공장에서는 정비 작업 중 황화수소와 암모니아에 노출돼 작업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수관 준설, 정화조 청소 등 일상적 업무에서도 유사한 질식사고가 반복되며, 황화수소·메탄·일산화탄소 등의 유해가스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단순 사고가 아닌 구조적 문제

맨홀 질식사고는 단순히 작업자의 부주의나 현장 관리 미흡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인해 안전관리 주체가 불명확하고, 관련 법령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악취방지법 등으로 분산되어 있어 일관된 대응이 어렵다. 더불어 인력 중심의 재래식 점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사고 예방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맨홀 질식사고는 산업보건 관리체계의 문제이자, 첨단 기술 도입 수준에 좌우되는 사회적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사고를 유발하는 세 가지 핵심 원인

01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유해가스

하수관이나 정화조 안에는 황화수소, 메탄, 일산화탄소 같은 독성 가스가 기본적으로 쌓여 있다. 특히 물이 떨어지거나 단차가 있는 구간에서는 물속에서 기포가 생기면서 이 가스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 이때 갑자기 고농도의 황화수소가 확 분출되는데, 미리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즉, 평소에는 안전해 보여도 순간적으로 치명적인 질식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02형식화된 법령과 현장의 괴리

현행 법령은 산소 및 유해가스 측정, 감시인 배치, 보호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실무 현장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생략되거나 장비 미비, 미착용 사례가 빈번하다.

03불명확한 안전 책임과 관리 부재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며, 유해가스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도 부재하다. 현행 대응체계는 여전히 인력 중심이고, 기술은 연구 수준에 머물러 있어 예방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한계가 분명한 현 대응 체계

현장의 대응 체계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 재래식 점검의 위험성: 인력이 직접 위험 공간에 진입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본질적인 위험이다.
  • 산업보건 관리의 분산성: 환경부, 고용노동부, 지자체가 각기 다른 기준으로 관리해 현장에서 혼란을 유발한다.
  • 기술 도입의 격차: 드론, IoT, 스마트장비 등은 여전히 시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일반화가 어렵다.
  • 산업 전반의 보건관리 취약성: 다단계 하청 구조와 임시·단기 작업 형태는 건설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환경미화, 도시 기반시설 유지관리 등 여러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안전·보건 관리 책임이 불분명해지고, 현장에 보건관리자가 배치되지 않거나 권한이 약화되면서 체계적 관리가 사실상 이루어지기 어렵다. 특히 외주나 용역으로 운영되는 작업에서는 안전보건 규정 준수보다 비용 절감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아, 질식·화재·폭발과 같은 중대재해 위험이 높아진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대응 전략과 정책 제언

01첨단 기술 도입 확대

  • ○ 드론을 활용한 무인 점검

    사람이 직접 맨홀이나 하수관에 들어가지 않고, 드론이나 소형 로봇으로 내부 상태를 확인한다. 보건관리자는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을 통해 산소 농도, 가스 축적, 구조물 파손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 ○ IoT 기반 실시간 가스농도 감지

    휴대용 측정기가 아니라 고정형·이동형 IoT 센서를 설치해 가스농도를 24시간 자동 감시한다. 보건관리자는 앱이나 관제시스템으로 위험 수치를 즉시 알림을 받아, 근로자 접근 전 사전 차단 조치를 할 수 있다.

  • ○ AI 기반 위험 예측 시스템

    이전 작업 기록, 날씨(기온·습도·기압), 작업 환경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오늘은 황화수소 급상승 가능성이 높음’ 같은 위험 신호를 미리 알려준다. 보건관리자는 이를 근거로 작업 허용 여부를 판단하거나 추가 보호 장비 착용을 지시할 수 있다.
    → 이러한 기술은 단순 시범사업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원 및 표준화 정책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02법·제도 통합과 정비

  • ○ 관련 법령의 일관성 확보

    보건관리자는 분산된 규정 속에서도 혼란 없이 관리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하나의 통합 기준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관리의 효율성과 안전의 실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 ○ 작업허가제 강화 및 책임 주체 명확화

    단순히 서류 작성으로 끝나는 허가제가 아니라, 보건관리자 확인 → 안전담당자 승인 → 발주자 책임 명시 순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 스마트 장비 도입 보조금 및 훈련 확대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장비 도입 비용 부담이 크므로,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원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건관리자와 근로자가 정기적으로 가스 측정기, 공기호흡기, 드론 운영법 등 스마트 안전장비 사용법을 훈련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을 권고한다.

03보건학적 접근 필요

  • ○ 현장 중심, 예방 중심 패러다임으로 전환

    사고 발생 후 대응이 아니라, ‘진입 전 위험 차단‘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보건관리자는 작업 시작 전 반드시 가스농도 측정과 환기 여부를 확인하고, 기준치 이상일 경우 작업을 중지시켜야 한다.

  • ○ 보건·안전 연계형 종합 관리 체계 구축

    안전관리자는 장비와 절차를 중심으로 위험을 관리하고, 보건관리자는 근로자의 건강상태와 노출위험을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이 두 역할은 어느 한쪽이 보조적이거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고 동등한 파트너십 속에서 협력해야 한다. 독립된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된 협력체계로 운영될 때, 안전과 건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 ○ 보건·안전 연계형 종합 관리 체계 구축

    안전관리자는 장비와 절차를 중심으로 위험을 관리하고, 보건관리자는 근로자의 건강상태와 노출위험을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이 두 역할은 어느 한쪽이 보조적이거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고 동등한 파트너십 속에서 협력해야 한다. 독립된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된 협력체계로 운영될 때, 안전과 건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결론: 한 명의 생명에서 시작하는 안전보건

맨홀 질식사고는 단순한 현장의 사고가 아니라, 산업구조와 사회 전반에 내재된 보건·안전 관리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문제이다. 따라서 장비, 제도, 교육, 기술 전반에서 ‘예방 중심’의 새로운 관리 틀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안전보건기술의 표준화, 실효성 있는 교육 강화, 법·제도의 정비와 첨단 기술의 현장 적용, 그리고 산업–학계–정부 간의 협력체계가 반드시 구축되어야 한다.

특히, 보건관리자의 철저한 준비와 전문적 관리는 곧 건강한 도시, 건강한 산업, 그리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점검과 예방 조치는 근로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키는 핵심적 활동이며, 나아가 산업보건과 공중보건을 아우르는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