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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정착을 위한 제언

김광일

글.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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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본법이 제정되었고 올해 1월 27일 법이 시행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통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과 하한선이 있는 징역형을 도입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성과는 진일보한 면이 있다. 하지만 제정 당시 경영계의 로비와 정부의 관료적 판단 등으로 발주자 책임이 삭제되고 처벌 수위 및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대폭 낮아졌으며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원안에 비해 후퇴 제정되면서 많은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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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00일이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시행이 무색하게 기업의 안전보건 태만 경영은 변함이 없고, 법 시행 이후에도 토사 붕괴사고, 추락사고, 폭발사고, 끼임사고 등 여전히 노동자들은 중대재해로 죽고 다치는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발생된 평택 에스피엘 제빵공장 청년노동자 사망사고, 충북도청 도로보수 공무직 노동자 사망사고, 안성 물류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기초적인 안전보건조치 미흡과 안전에 필요한 적정한 인력과 조직, 예산 등이 충분히 배치되지 않아서 발생한 인재이다.

특히, 에스피엘 청년노동자 사망의 경우 사회적 쟁점으로 대두되자 대통령이 나서서 산업재해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의 지시는 시의적절해 보이나 정작 정부 출범 이후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노동시간 유연화 시도와 중대재해처벌법의 소관 부처가 아닌 기재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연구용역을 진행한 월권행위, 그리고 철학 없는 자율안전보건을 내세우는 점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산업재해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라고 하면서도 손발로는 산업재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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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2022년 하반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과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 중대재해처벌 법을 완화하여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에 관한 책임마저도 삭제하려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의 경우 소관 부처가 아닌 기재부가 경영책임자 처벌 감경과 면제를 위한 목적으로 연구용역을 진행하여 노동부에 전달하였다. 형사처벌 삭제, 최고안전담당자 선임 시 최고경영자 면책, 징벌적 손해배상 제한 등 모두 경영계가 지속적 으로 주장했던 것들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사문화시키는 내용들이다. 내용도 문제일 뿐만 아니라 기재부의 행태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월권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소관 부처는 분명히 고용노동부 이다. 기재부가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 연구결과 보고서를 통해 고용노동부를 압박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에 대한 구체적인 연차별 이행계획이 공개되었는데, 정부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경영계의 입맛에 맞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사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 노사정이 합의한 수많은 산재 예방대책의 이행사항을 점검하고 미진한 부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합의했던 경사노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합의문(2020년)만 보더라도 노사가 큰 이견 없이 원하고 있는 정부 일반회계 확대 안건이 합의 이후 이행과정에서 후퇴하고 전진이 없는 등 합의 자체의 무용론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가 성과와 치적을 위해 실질적인 이행 없는 합의만 반복하고 노사가 들러리만 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지난날의 합의를 실질적으로 이행하여 산재예방에 전진이 있도록 하여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등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업이 사전에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통해 노동자의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기업들은 경제적 이윤이나 비용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이들의 안전을 위해 예산을 투자하고 안전보건 인력을 확대하는 등의 적극적인 산재예방활동에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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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에는 50인 미만 사업장도 법 적용대상에 포함되어 중대재해처벌법 준수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관리체제, 안전보건관리 규정 등 산업안전보건을 위한 기초체계 전반에서 보호의 범위 밖에 놓여있는 실정이며 법규를 준수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많다. 하지만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사전 대비가 전무한 실정이며 법 시행 후 300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정부의 뚜렷한 대비책이 제시 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해설서 또는 가이드북 배포 등의 간접적인 지원보다 기업에 실질적 으로 도움 될 수 있는 지원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일반회계 비용을 확대하여 중소규모 사업장이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해나갈 수 있도록 안전보건관리 역량 제고를 위한 재정, 기술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산재 예방에 대한 사업주의 관심과 투자 확대 등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과 노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야 하며 노동자도 사업장 내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실질적으로 구축·운영될 수 있도록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노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대립적 노사관계 틀에서 탈피하여 사업장의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노사가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
한국노총은 위험한 작업을 통해 이윤을 얻는 자가 책임을 지도록 정부의 안전보건에 관한 규제 완화와 처벌 감경을 저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