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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일중독: 성취의 그늘과 삶의 균형

글. 오윤선 교수

  • 한국성서대학교 기초교양교육학과 (교육학박사/상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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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한국인의 그림자

한국 사회에서 장시간 근로와 성과주의 문화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사회적 압력 속에서 형성된 현실이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 성실하다’는 믿음과 압축적 산업화,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가 맞물리면서 많은 한국인은 스스로 멈추기 어려운 상태로 몰린다. 즉, ‘근면 성실’이라는 강력한 페르소나를 통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놓쳤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성장의 엔진으로, 때로는 삶을 갉아먹는 독으로 작용하는 ‘일중독(Workaholism)’은 단순한 과로를 넘어선 개인의 깊은 심리적 갈등과 고통의 신호이다. 이는 한 개인이 일이라는 사회적 역할에 과도하게 몰입하여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감정을 외면하는 현상으로, 궁극적으로 삶의 총체적인 불균형을 초래한다.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 시간은 1,859시간으로 OECD 평균(1,708시간)보다 151시간 길다. 주 50시간 이상 근로자 비율은 17.7%로 OECD 평균(12.9%)을 상회하며, 특히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과 특수고용직에서 장시간 근로가 집중된다. 2025년 2월 직장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8.1%가 주 4일제 도입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이러한 현실은 역사적·구조적 배경과 맞닿아 있다. 압축적 경제 성장과 산업화 과정에서의 노동 착취 경험,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은 개인에게 ‘멈출 수 없는 업무 몰입’이라는 심리적 조건을 심어주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환경은 단순한 과로를 넘어 건강 악화, 정신적 소진, 가족 관계 단절 등 다양한 문제를 초래한다. 이러한 구조적·사회적 맥락은 개인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사례를 보면 그 현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00(36세) 간호사는 하루 12시간 넘게 중환자실을 지킨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동료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고,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탓한다. 피로와 불면이 일상이지만 역설적으로 일에서만 존재의 가치를 느낀다. 쉬어야 함을 알지만 쉴수록 불안해지는 전형적 일중독의 모습이다. 게다가 동료 간 비교와 병원의 성과 평가 시스템은 그녀가 쉬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박00(45세) 생산관리자는 가족과 성과를 위해 하루 12시간 이상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몸은 지쳐도 손은 일에서 떨어지지 않고, 마음은 늘 업무 현장에 머문다. 개인적 집착과 조직적 압력이 맞물린 전형적인 현대인의 일중독 그림자다. 특히 회사의 성과 목표와 품질 압박은 그를 계속 긴장 상태에 놓이게 하며, 주말조차 마음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든다.
두 사례를 관통하는 것은 직종과 환경이 달라도 ‘일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초상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과로와 책임감, 멈추지 못하는 마음이 맞물리며 개인의 건강과 삶뿐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단순히 개인을 탓하는 시선을 넘어, 구조적·사회적 조건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인의 일중독 현상이 어떤 심리적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개인의 정신건강과 삶의 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일중독이라는 외적인 문제 해결을 넘어 ‘내면의 치유와 자기 돌봄’으로 확장하여 건강한 삶을 위한 균형감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일중독의 뿌리: 심리·문화·조직이 만든 덫

일중독은 단순히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심리적 요인, 사회문화적 요인, 그리고 직장의 조직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며 형성되는 복잡한 현상이다.
심리적 측면에서는 낮은 자존감과 내면에 자리한 불안감,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적 성향 등이 일에 몰두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에서 오는 도파민 보상 체계는 이러한 행동을 더욱 강화한다.
사회문화적 배경으로는 무엇보다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다. 역사적·구조적으로 경험한 트라우마와 끊임없는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 구조 또한 일중독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조직적 요인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장시간 근무를 당연시하는 문화, 성과 평가에 대한 끊임없는 압박, 상사나 동료로부터 오는 직·간접적인 업무 압력이 개인이 일에 매달리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끊임없는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 몰입을 강요한다. 개인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일과 성과를 통해 증명하려 하며, 결국 정체성을 업무와 동일시하게 되어 과로의 악순환에 빠진다. 특히 외부 사회의 압력과 내면의 불안이 결합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내적 불안이 가중된 개인은 강박적으로 일에 몰두하여 이를 해소하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건강 악화와 깊은 정서적 고립으로 이어져 결국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은 이러한 일중독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구조적 기반이 된다. 급격한 산업화 경험, 국가적 위기 극복 과정, 치열한 경쟁 중심의 교육 시스템 등이 그 예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성과 중심 문화의 내면화’라고 설명한다. 즉, 개인이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오직 성취를 통해서만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왜곡된 자기 인식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스스로를 ‘얼마나 일했는가’로 평가하며, 삶이 아닌 일에 종속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뇌가 증명하는 일중독: 멈출 수 없는 몰입의 메커니즘

첫째, 일중독은 단순한 습관적 과로가 아니라 뇌의 보상 회로와 자기조절 회로가 재편성된 복합적 질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복적 성과 달성은 쾌감을 유발하고 행동을 강화하며, 동시에 자기 통제 능력을 약화시켜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장기적 과로는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와 면역력 저하, 수면 장애, 우울, 기억력 감퇴 등 신체적·정신적 문제를 초래한다.
둘째, 성과 달성 시 측좌핵과 복측피개영역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쾌감이 유발되고, 이 경험은 반복적 업무 몰입을 강화하는 순환적 패턴을 만든다. 그러나 장시간 몰입과 지속적 스트레스는 전전두엽의 신경가소성을 변화시켜 충동 억제와 행동 조절 능력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멈춰야 한다’는 인지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실제 행동 억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시에 과도한 업무 몰입은 HPA 축을 자극하여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면역력 저하, 만성 염증, 수면 장애, 우울, 인지 기능 저하 등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개인의 심리적 요인(완벽주의, 낮은 자존감, 불안 등)이 결합하고, 장시간 근무·성과 압박·경쟁 문화 같은 조직적 환경이 더해지면서 강화된 신경학적 취약성은 일중독 상태를 장기화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뇌, 심리,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질병으로서의 일중독을 설명한다.

일중독의 그림자: 개인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

일중독은 개인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겨준다. 단기적으로는 성취감과 사회적 인정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신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심각한 내면의 고통을 유발한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휴식 부족은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정서 조절 능력을 저하시킨다. 또한 일에 대한 강박과 완벽주의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게 하여 실패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을 야기하며, 우울감으로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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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일 중심 문화가 개인의 내면을 점점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에 몰두할수록 자기 감정에 둔감해지고 타인의 감정에도 무뎌진다. 스스로를 기계처럼 다루다 보니 결국 감정의 탈진과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정신적으로는 극심한 정서적 고갈로 인한 탈진, 무기력감, 냉소주의, 업무 효율성 저하를 경험하며 이로 인한 불안과 우울은 스스로를 소진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가둔다. 삶의 질 측면에서는 여가와 휴식이 제한되고, 성과 중심으로 삶의 의미가 한정된다. 따라서 만성 두통, 소화불량, 불면증, 원인 모를 통증 등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않고 외면한 결과이다.
특히 가족에게는 감정 표현이나 공감 능력이 저하되면서 정서적 소외, 대화 단절, 갈등이 불거진다. 자녀에게는 정서적 결핍과 잠재적 중독 성향이 대물림될 수 있으며, 이는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이어져 일중독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조직에서는 단기적으로 성실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창의성 저하, 팀워크 붕괴, 과로 문화 확산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에 따른 의료비 증가, 생산성 저하, 정신건강 악화가 누적되어 사회적 비용이 가중된다. 따라서 일중독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구조적 문제로 확장된다.

회복과 균형: 새로운 일 문화의 패러다임

  • -개인·조직·사회 통합 관점에서 본 일중독 회복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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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 사회는 이러한 일중독의 폐해를 직시하고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개인의 심리적 성숙과 사회적 의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중요한 신호이다. 그러나 일중독의 극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개인적·조직적·사회적 차원의 통합적 개입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
    개인적 차원의 접근으로는 인지행동치료(CBT)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 CBT는 “일을 하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왜곡된 사고를 교정하고, 과도한 업무 몰입을 줄이는 행동 패턴을 훈련시켜 사고와 행동의 변화를 촉진한다. 정신역동적 접근은 어린 시절의 결핍과 불안을 탐색하여 개인이 내면적 상처와 직면하도록 돕는다. 마음챙김 명상과 집중훈련은 현재 순간에 주의를 두고 결과보다는 과정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완화하고 내면의 안정감을 강화한다.
    뇌과학적 관점에서도 개입이 필요하다. 도파민 보상 회로의 과활성화로 인한 몰입 습관을 인식하고, 점진적 보상 재조정과 운동·창작·사회적 교류 같은 대체 활동을 통해 신경회로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신체적·심리적 균형 회복에 핵심적이다.
    개인의 회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근무시간 제한, 휴가 장려, 성과 평가 다양화 같은 제도적 지원은 과도한 몰입을 방지하며, 조직 문화 역시 개인의 자율성과 삶의 균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나아가 사회적 차원에서는 노동 정책과 정신건강 지원 확대, 교육적 개입을 통해 “성과만이 삶의 의미가 아니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일중독 문제의 예방과 회복을 동시에 촉진할 수 있다. 결국 한국 사회가 일중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을 덜 하는 것’을 넘어선 ‘내면의 균형 회복’에 의미를 두고, 자기 성찰과 상담적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 -지속 가능한 일-삶 균형을 위한 예방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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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멈춘다’는 것은 생산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회복을 선택하는 일’이다. 회복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돌봄의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며, 예방 전략 또한 중요하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시간 관리, 자기 성찰, 여가 활동을 통해 성취감과 행복감을 증진하고, 가족과의 정서적 교류를 우선시하며, 일과 삶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실천은 개인이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조직적 차원에서는 근무시간 준수, 팀워크 중심의 평가, 직원의 휴식과 회복을 장려하는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이 회복과 예방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직장 내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의무화하고 접근성을 높여, 일중독으로 고통받는 개인들이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더불어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단순한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정책적 지원과 문화적 담론을 통해 장기적으로 균형 있는 노동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지속 가능한 일-삶 균형은 개인의 자기효능감 회복, 가족의 정서적 안정, 조직의 생산성과 창의성 향상, 사회적 비용 감소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다층적 전략을 요구한다. 일은 삶의 전부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며, 지속 가능한 행복과 공동체 성장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학문적·정책적 접근과 개인적 실천이 함께 이루어질 때 한국 사회는 ‘일의 성취’와 ‘삶의 조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다시 물어야 할 질문: 나는 왜 이렇게 일하는가?

한국 사회의 일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끝없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하며, 쉼조차 불안한 시대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일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일 속에서 삶의 의미를 완성해 가는 존재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일하는가?” 지금은 일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는 단순히 ‘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의 내면을 존중하고 통합하며, 동시에 일과 삶의 의미를 조화롭게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실천을 의미한다.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때, 일은 삶을 소모시키는 굴레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여정이 된다. 개인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되찾고, 가족은 서로의 쉼이 되며, 조직은 사람을 수단이 아닌 동반자로 바라볼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된다. 사회 역시 성과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일은 삶의 전부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다. 우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어 숨을 고를 때, 그제야 비로소 진짜 행복이 우리 곁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일의 성공보다 삶의 균형이 더 깊은 성취임을, 이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때이다.”
“쉼은 멈춤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숨결이다.”
오늘 하루가 너무 벅찼다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괜찮아, 오늘은 여기까지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