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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알코올 중독 문제: 질병 인식과 치료적 접근
글. 오윤선 교수
- 한국성서대학교 기초교양교육학과 (교육학박사/상담학박사)
왜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가? 한국인의 음주 문화와 소비 실태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술을 마신다. 그 중 대부분은 술의 본질적 특징인 ‘취한다’는 감각을 경험하기 위해 음주를 한다. 주세법에 따르면 알코올 함량이 1도 이상인 음료는 모두 술로 분류된다. 이 기준에 속하는 에틸알코올(ethanol, CH₃CH₂OH)은 인류가 오랫동안 환각의 매개로 사용해 온 물질 중 하나로,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매력을 주어왔다.
2023년 기준, 한국 성인(19세 이상) 중 74.3%가 술을 마시고 있으며, 한국인의 연간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8.7L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하는 세계 평균 5.8L를 크게 웃돌고 있다. 한 달에 평균 9일을 음주하는 셈이다. 한국 내 주류 판매점 수는 약 35,000개에 이르며, 주요 주종으로만 봐도 국내 연간 소비량은 소주 약 9,305만 상자(360㎖ 30병), 맥주 약 2억400만 상자(500㎖ 20병), 위스키 약 353만8천 상자(500㎖ 18병)에 달한다. 이를 병으로 환산하면 소주 27억9천150만 병, 맥주 40억8천만 병, 위스키 6천369만5천 병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음주 실태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만 15세에서 64세까지의 생산 인구를 기준으로 계산할 때, 국민 1인당 연간 주류 소비량은 약 소주 82병, 맥주 120병, 위스키 1.9병에 달한다. 추가로, 약주, 매실주, 와인 등 기타 주류 소비량도 포함한다면 이 수치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국내 주류 시장은 지난해 약 3조 4천억 원 규모로 추산되었으며, 이 중 기타 주류는 시장의 10%가량을 차지했다. 이러한 통계는 우리 사회의 음주 문화가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며, 한국인의 음주 행태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한국 사회의 음주 문화와 알코올 중독 문제
의학계에서는 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을 고려할 때, 음주 후 다시 마시기까지 최소한 3일의 회복 기간을 갖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권고에 따라 연간 술을 마실 수 있는 ‘건강 음주 일수’는 91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서는 홈술족, 혼술족, 폭음과 과음, 알코올 의존족을 양산하며 술을 마시는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국에서 알코올 사용 장애의 1년 유병률은 2.6%로, 이는 약 134만 명에 해당한다. 이러한 수치는 프랑스나 독일보다 높은데, 이는 한국이 음주 규제가 약하고 ‘주류 가용성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인사처럼 '술 한잔하자'라고 외치는 문화적 요인 또한 큰 이유로 들 수 있다. 한국의 관대한 음주 문화는 자연스레 음주 운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의 35%가 음주 운전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건수가 5,500건으로 지난해보다 300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자살의 25%는 알코올 중독과 관련이 있으며, 살인, 강간, 폭력 등의 강력 범죄 중 30-40%가 음주 상태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에 검거된 살인범 중 37.5%, 방화범의 39%가 주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주취자로 인한 경찰 출동 건수가 95만 8천602 건에 달했다.
문제는 알코올 사용 장애로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실제 치료를 받은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코올 중독은 사회문화적 편견이 강하고 질병으로 인식되는 정도가 낮기에 인식개선 활동과 치료 지원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정책이 미비하다. 음주 폐해 예방관리 사업의 예산을 살펴보면, 16년 동안 계속 감소하여 2008년에는 23억 5800만 원이었으나 2023년에는 12억 550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만들어진 음주 폐해 예방 위원회는 현 정부의 정부위원회 폐지·통합 방안으로 인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2024년 10월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알코올 질환 전문 병원은 경기도 4곳, 충북 2곳, 부산·광주 각각 1곳 등 전국에 총 8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알코올 의존증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6만 2818명에 지나지 못하였고, 이마저도 전문 병원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알코올 의존증은 중증으로 악화하기 전 초기 치료가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대기 과정에서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 소비의 생리학적 메커니즘과 대사 과정: 동아시아인의 건강 위험성
알코올이 체내로 들어오면 소장에서 흡수되고, 일부는 위에서도 흡수된다. 장 점막을 통해 단순 확산된 알코올은 혈액 내로 들어와 혈관을 통해 체내 순환을 하다가 문맥이라는 혈관을 타고 간에서 대사 된다. 간에서는 알코올을 두 단계로 분해하는데, 1단계에서는 알코올 탈수소효소(ADH: alcohol dehydrogenase)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로 전환된다. 2단계에서는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ALDH: acetaldehyde dehydrogenase)에 의해 아세트산(acetate)으로 전환되며, 최종적으로 아세트산이 분해되어 이산화탄소(CO2)와 물(H2O)로 변한다. 간에서 대사하지 못한 알코올은 혈액 속에 남아 있다가 호흡이나 피부, 소변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다. 성인의 평균 알코올 분해량은 1시간에 7~10g 정도로, 소주 1병을 마셨을 경우 체내에서 알코올이 모두 제거되려면 약 7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진 체질이거나 과도한 음주를 하게 되면 알코올 분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체내에 아세트알데하이드가 계속 남아 있게 된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는 아세트알데하이드를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특히 동아시아인의 35~40%는 ADH와 ALDH 알코올 분해효소 결핍증을 가지고 있어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현상, 즉 '아시안 플러쉬 증후군(Asian flush Syndrome)'이 나타난다.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머무는 부위에서는 암이 유발되고, 신경과 혈관의 노화가 촉진되며, 전신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술을 마신 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술을 마시게 되면 심근경색, 아토피 피부염, 퇴행성 신경계 질환 등의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인의 약 40%는 소량의 음주에도 안면홍조, 메스꺼움, 졸음, 아침 숙취, 실신 등의 특이적인 생리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소량의 술도 마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에서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여 기분을 고조시키고, VTA(Ventral Tegmental Area)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보상 중추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에 작용하여 쾌락감을 유발한다. 그러나 반복적인 음주는 도파민 수용체의 민감도를 낮추어 동일량의 알코올로는 같은 쾌락을 느끼기 어려워지는 내성이 생긴다. 이로 인해 알코올을 끊게 되면 도파민 결핍으로 인한 금단증상(Withdrawal)이 나타나며, 우울감, 불안, 집중력 저하,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뇌는 알코올로 인한 보상 경험을 기억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유발 요인이 있을 때 음주 충동이 발생하는 갈망(Craving)이 생기게 된다.
알코올 중독의 진행 단계
알코올 중독은 생물학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발생한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의 진행 과정은 전구단계, 진행성 단계, 중대한 위기 단계, 만성적 단계로 실행된다.
1단계인 전구단계에서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가끔 술을 마시거나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주기적으로 음주하게 되며, 이로 인해 음주량이 증가하고 내성이 생긴다. 2단계인 진행성 단계에 이르면 술을 은밀하게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 현상이 점차 심해진다. 3단계인 중대한 위기 단계에서는 음주 조절 능력을 상실하고 해장술을 마시는 등의 행동 문제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며, 식욕이 없어지고 중독에 대해 변명하게 된다. 4단계인 만성적 단계에서는 매일 술을 마시게 되고, 조금만 마셔도 취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일할 능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술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알코올 금단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진전섬망(delirium tremens)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초조, 불안 증세와 함께 환청, 피부 위를 기어가는 듯한 환촉, 허공에 떠다니는 것 같은 환시와 함께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진전섬망은 술을 마신 지 48-96시간 후에 흔히 발생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사망률이 2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 중독의 치료 접근법
알코올 중독은 진행 단계가 깊어질수록 단순한 결심과 의지만으로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치료를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중독자임을 받아들이고, 알코올과 관련된 모든 자극(TV 술 광고, 회식 자리, 술친구 등)을 피해야 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알코올 중독 치료는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할 때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 약물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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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실시되고 있는 약물치료는 크게 급성중독, 금단증상, 단약 유지 치료로 구분된다. 급성중독 상태에서는 해독치료를 통해 정신증상들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이 실시되고 수액 요법을 통해 수분과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며, 알코올로 인한 신체 질환을 평가하여 치료한다. 금단 증상이 심할 경우에는 입원에 의한 약물 치료로 금단 증상을 완화하고, 증상이 안정된 이후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지속되는 정신과적 문제(우울, 불안, 불면, 충동성 등)에 대한 적극적인 약물 치료를 진행한다.
알코올 금단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약물로는 신경 안정제와 항경련제(Anticonvulsants,예:벤조다이아제핀 계열)가 주로 사용된다. 음주 욕구를 줄이는 항갈망제(Anti-craving agents)와 금단 증상 완화, 영양 상태 개선, 간 기능 보호를 위한 티아민(Thiamine, 비타민 B1)과 같은 약물도 사용되며, 이러한 약물은 의사의 지도를 받으며 복용해야 한다.
- 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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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 치료에서 심리치료는 음주 의존성을 극복하고 금주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정서적 전략을 제공한다. 많이 사용되는 심리치료로는 인지행동치료(CBT)가 있으며, 이 치료기법의 목적은 음주를 유발하는 부정적 사고와 행동을 인식하고 대체할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학습하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환자의 내적 동기를 강화해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높이는 동기강화치료(MET), 감정 조절 및 스트레스 관리 능력을 강화하여 음주 유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돕는 변증법적 행동치료(DBT)가 실시된다. 심리교육은 환자에게 알코올 중독과 그 영향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여 치료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식하게 한다.
그 외에도 동료 중독자와의 경험 공유를 통한 집단치료, 가족치료를 통해 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지를 이끌어내는 방법 등이 있다. 더불어 환자의 무의식적 감정과 과거의 상처를 이해하고 음주로 나타나는 부정적 행동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정신역동치료 기법과 명상과 마음챙김(Mindfulness)기법을 통해 충동 조절 능력을 발전시키고 신체활동으로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유산소 운동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금주 유지에 대한 의지가 강한 환자일수록 심리치료 효과가 오래 지속되므로 금주 의지를 강화하고 긍정적인 생활 습관을 형성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꾸준한 관리가 중요하다. 또한 자조모임(Alcoholics Anonymous, A.A.)의 참석을 통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가족 교육을 실시하여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이해와 중독자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알코올 중독 치료에서의 핵심 요소는 도파민 시스템의 회복이다. 꾸준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통해 뇌가 정상적인 보상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알코올 중독은 진행성 뇌 질환으로, 스스로는 멈추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따라서 피해자나 가족, 지인은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경우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여 도움을 요청해야 하며, 예방적으로 건강한 음주 습관과 음주 규모 제한, 정신 건강 관리 및 유전적 위험 평가와 민감성 이해를 통해 알코올 중독의 진행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