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건강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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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성 정신질환
글. 권순찬
-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12년이 되어간다. 여러 질환을 다루지만, 업무상 정신질환 심의에 참여하는 날이면 늘 더 많은 시간을 각오하게 된다. 사건 수 자체는 많지 않지만, 진술은 길고 복잡하다. 대부분 하나의 사건에 두 개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근로자 본인 또는 대리인의 주장, 그리고 이를 반박하는 사용자의 설명이다. 경우에 따라 사용자 측에서 여러 명이 참석하기도 한다.
정신질환 심의는 특히 쉽지 않다. 신체 질환과 달리 영상 소견이나 검사 수치처럼 명확한 객관적 지표로 단정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진단은 의학적으로 내려질 수 있지만, 그 원인이 업무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스트레스 요인의 존재, 사건의 강도와 반복성, 업무 환경의 특수성, 기존 질환의 유무, 시간적 선후관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특히 적응장애의 경우가 그렇다. 명확한 외상 사건을 전제로 하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달리, 적응장애는 조직 개편, 인사 갈등, 업무 과중,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환경적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되기보다 일정 기간 누적된 부담이 임계점을 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사실관계 정리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기록의 비대칭성이다. 사용자는 근태기록, 인사자료, 업무분장표 등 문서화된 자료를 제시하지만, 근로자의 고통은 상당 부분 진술에 의존한다. 언어폭력이나 배제, 반복적 압박과 같은 문제는 공식 문서로 남지 않는 일이 흔하다.
물론 최근에는 근로자 측도 노무사나 법률대리인을 통해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진술서가 정리되고 관련 자료가 보완되면서 심의 과정이 보다 구조화되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기록으로 남은 사실과 기록되지 않은 경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판단 지점이다.
이러한 심의 현장의 변화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10년간 업무상 정신질환 산재 승인 건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는 위험이 급격히 확대되었다기보다는, 업무와 정신질환의 관련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 구분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2025.7 |
| 계 | 46 | 69 | 103 | 166 | 213 | 376 | 491 | 424 | 450 | 471 | 240 |
| 우울증 | 7 | 11 | 33 | 53 | 59 | 98 | 102 | 73 | 77 | 87 | 42 |
| 적응장애 | 10 | 19 | 29 | 51 | 72 | 161 | 245 | 221 | 229 | 250 | 140 |
| 급성스트레스장애 | 12 | 9 | 17 | 13 | 15 | 23 | 9 | 25 | 36 | 36 | 19 |
| 외상후스트레스장애 | 11 | 25 | 19 | 36 | 39 | 55 | 81 | 62 | 49 | 68 | 33 |
| 불안장애 | 0 | 5 | 4 | 4 | 12 | 17 | 20 | 21 | 36 | 14 | 5 |
| 기타 | 6 | 0 | 1 | 9 | 16 | 22 | 34 | 22 | 23 | 16 | 1 |
2015년 46건이던 승인 건수는 2021년 491건으로 약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후에도 연간 400건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적응장애의 비중이 크게 늘어 2024년에는 250건으로 전체 승인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복적·누적적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평가가 강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2023년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판정 지침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 정신질환에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적응장애, 우울병 에피소드 등이 포함된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고객의 폭언·폭행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거나 악화된 질병 역시 해당된다. 또한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던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에 이른 경우, 또는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근로자가 그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
제도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왔다.
1995년 5월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별표를 통해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최초로 공포되었고, 2013년 6월 시행령 개정으로 신경정신계 질환 항목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포함되었다. 이어 2016년 인정기준 개정을 통해 우울증과 적응장애가 추가되었다.
법령의 큰 틀 변화와 별도로, 실제 인정 기조의 변화는 조사·판정 지침의 개정을 통해 확인된다.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규정 도입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시행 이후, 반복적·누적적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평가가 점차 강화되어 왔다.
정신질환은 발생 이후의 보상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적응장애처럼 환경적 스트레스에 기인한 질환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직 구조와 관리 방식 자체가 위험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산업보건이 해야 할 일은 ‘산재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승인 이후에도 유사 사례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업무량은 늘어나고 인력은 줄어들며, 압박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 환경을 그대로 둔 채 재발 방지를 개인의 회복력에 맡기는 것은 예방이 아니다. 산업보건은 증상을 관리하는 영역이 아니라, 위험을 구조적으로 줄이는 영역이어야 한다.
정신질환 심의에 참여하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근로자는 단번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일정 기간 축적된 부담이 어느 순간 한계를 넘었을 뿐이다.
적응장애가 더 이상 ‘업무 수행이 어려운 개인이 산재를 받기 위해 선택하는 진단’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누적된 업무 환경의 부담이 드러나는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
산재 신청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단순한 분쟁의 시작이 아니라 조직에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회사가 법적 방어에만 집중하기보다 이를 계기로 조직 문화를 점검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윤 추구를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는 구조 속에서 비로소 건강한 생산이 가능하다.






